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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화

鄭九和

1884. 2. 1 ~ 1966.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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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정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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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1919년 청양군 정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884년 2월 1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목면(木面) 안심리(安心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청양군 정산면(定山面)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5일 정산면 정산시장에서 백곡리(白谷里)의 홍범섭(洪梵燮)·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만세시위 과정에서 일제의 탄압으로 주요 인물들이 헌병분견소로 연행되었다. 이 장면을 목격하고 분노한 주민들은 만세시위 대열을 형성하고 헌병분견소로 이동하여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 권흥규(權興圭)가 일제 헌병의 발포로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4월 6일 아침 권흥규의 친인척 및 주민들이 헌병주재소로부터 시신을 인수하여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고 쓴 명정을 앞세우고 안심리로 향할 때 운구행렬에 동참하였다. 운구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주변의 주민들이 나와 통곡하며 운구행렬에 합류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운구행렬의 규모는 더욱 확대되었고, 목면 지곡리(池谷里)를 지날 즈음부터 ‘독립만세’의 외침이 나오면서 태극기가 배포되었다. 이에 운구에 참여한 사람들과 울분 속에 ‘독립만세’를 연창하며 운구를 진행하였다. 권흥규 운구행렬이 만세시위로 전환되자, 다급해진 일제는 만세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해 공주(公州)의 헌병대를 안심리 방면으로 파견하였다. 이들은 운구행렬을 발견하자, 곧바로 무차별적으로 발포하였다. 이로 인해 명정을 쓴 권영진(權寧鎭)과 상여꾼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사망하였으며,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참변이 일어났다. 이 날 만세시위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1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의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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