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조
鄭國朝1893. 7. 6 ~ 1921. 11. 1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홍성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3년 7월 6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송암리(松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홍성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금마면의 만세운동은 부평리(富平里)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을 중심으로 4월 1일부터 시작되었다. 민영갑은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파악하고, 금마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이후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이재만과 협의한 후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 조한원(趙漢元)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4월 1일 가산리(佳山里)에 소재한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열리는 연극공연을 계기로 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4월 1일 예정대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연극이 공연되었다. 관객으로 참석해 있던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은 아직 공연이 끝나지 않은 오후 8시 경 객석에서 일제히 일어나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만세운동에 공감한 30여 명의 주민들이 즉시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따라 외치며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연극공연이 만세시위의 현장으로 전환되자, 소식을 접한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이날의 만세시위를 해산시켰으나, 금마면의 만세시위는 다음날로 이어졌다. 4월 2일 민영갑·이재만 등은 전날의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주민들과 함께 홍성시장으로 나가 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장날의 홍성시장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는 시위대를 보고 공감하여 다른 주민들과 함께 동참하였다. 시장에 나온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면서 전날의 연극공연장 만세시위보다 규모가 확대되었다. 민영갑 등의 지휘에 따라 홍성시장의 곳곳을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연창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날의 만세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일제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실이 인정되어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9일 즉결심판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이 인정되어 태(笞) 90도(度)의 고초를 겪었다. 태형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1921년 11월 16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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