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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하

丁奎河

1886. 10. 17 ~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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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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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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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영해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6년 10월 17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병곡면(柄谷面)에서 태어났다. 개신교 북장로교 송천동(松川洞) 교회의 조사(助事)였으며, 1919년 영덕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구세군 참위(參尉) 권태원(權泰源)의 권유로 영덕군 만세시위를 함께 계획하였다. 동료들과 함께 3월 18일 성내동(城內洞) 장날을 기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개신교인들을 불러 모아 만세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만세시위 계획을 인근 지역 교인들에게 알리게 하였다. 또한 각종 크기의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가 적인 종이깃발을 만들도록 하였다. 3월 18일 영해면(寧海面) 성내동 시장에서 2,000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태극기를 흔들며 ‘한국독립만세’를 외쳤으며 독립에 대한 연설을 하였다. 영해경찰관주재소 일제 경찰이 해산을 명하였지만, 이에 항거하여 시위 대열을 이끌었다. 시위대와 함께 영해공립보통학교 교사와 학생들에게 시위에 합류할 것을 요청하면서, 학교·면사무소·우편국 등 공공기관을 돌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또한 시위대 일부를 이끌고 성내동 시장에서 병곡면으로 진출하여 병곡면 지역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공무집행방해죄 등으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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