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섭
鄭沂燮1898. 12. 27 ~ 1943. 4. 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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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8년 12월 27일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강경읍(江景邑) 채산리(彩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논산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0일 강경읍 장터 만세시위는 이 지역의 사립 창영학교(昌永學校) 교사 엄창섭(嚴昌燮)이 주도하였다. 엄창섭은 학교의 방학 기간에 고향인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웅포면(熊浦面) 대붕암리(大鵬岩里)에 귀향해 있던 중, 3월 5일 경 군산(群山) 영명학교(永明學校)의 학생인 고향 후배 강금옥(姜金玉)에게서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의 상황을 자세하게 전해 들었다. 엄창섭은 만세운동에 크게 공감하여 자신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겠다고 결의하고 강경으로 돌아와 3월 6~7일 경부터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엄창섭은 평소 교류하고 있던 고상준(高相俊)·추병갑(秋炳甲)과 협의하여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이들은 만세시위의 날짜를 강경읍의 장날인 3월 10일로 계획하여 그 전에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김종갑(金鍾甲)·서삼종(徐三鍾)·추성배(秋聖培) 등이 동지로 동참하였다. 이들은 창영학교에서 3월 10일 아침까지 태극기 200여 장을 제작하였다. 3월 10일 아침 서삼종이 태극기를 가마니에 넣어 옥녀봉(玉女峰)으로 운반하고, 나머지 동지들은 주변에 만세시위 계획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이날 오전 김종갑·추성배 등으로부터 만세운동 계획을 제의받고, 곧바로 동의하여 동지로 결합하였고, 다시 이 내용을 한규섭(韓圭燮)에게 전달하여 동의를 받았다. 한규섭 등 동리의 주민들과 함께 오후 3시 경 옥녀봉에서 열린 사전집회에 참석하였다. 이 집회에서 엄창섭은 강경 장터로 가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자고 연설하였다. 이에 함께 호응하여 나눠받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강경 장터를 향해 행진하였다. 강경 장터로 행진하는 길목마다 많은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공감하여 동참했다. 강경 장터에 도착했을 때는 시위대의 규모가 수백 명이 되었다. 엄창섭의 지휘에 따라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본정통(本町通, 현 논산시 강경읍 태평길의 홍교리 일대)을 경유하여 강경 장터와 읍내 곳곳을 활보하며 만나는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엄창섭·추성배·한규섭 등과 함께 다른 주민들을 독려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1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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