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규
鄭東奎1879. 4. 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6)
관련 사건
- · 장단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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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6) 1879년 4월 3일 경기도 장단군(長湍郡) 대강면(大江面) 독정리(篤正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장단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장단군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3일 진남면(津南面)에서 최초의 만세시위가 일어난 이래, 3월 26일부터 4월 3일까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만세시위가 본격화된 지역도 진남면이었다. 3월 26일 진남면 이창영(李昶永) 등은 서울을 중심으로 나라의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3월 23일 만세시위에 뒤이은 새로운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이창영 등은 100여 명의 주민들을 지휘하여 돌덩이와 몽둥이 등으로 면사무소를 습격하는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29일에는 군내 여러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발생했다. 장남면(長南面)에서는 650여 명이 참여한 만세시위가 있었고, 진서면(津西面)에서는 이봉철(李奉哲)의 주도로 100여 명의 주민들이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면서 면장 송원섭(宋遠燮)에게 ‘만세’를 부르게 하고 면사무소에 걸린 일장기를 불태웠다. 장도면(長道面)에서는 수십 명의 주민들이 도덕암산(道德岩山)에 올라가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한 이래, 4월 초까지 여러 차례 지속적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3월 30일에도 장남면에서 전날과 비슷하게 630여 명이 참여한 만세시위가 발생하였다. 3월 31일 밤 장도면에서 약 70명의 주민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면사무소 앞까지 나아가 ‘독립만세’를 외쳤고, 강상면(江上面)에서도 200여 명이 참여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4월 1일에는 군내면에서 800여 명, 장남면에서 330여 명, 대남면(大南面)에서는 100여 명의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강상면(江上面)에서는 2,000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방화하는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대남면과 장도면에서는 4월 3일에도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자료의 한계상 장단군 어느 지역 만세시위에 참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 개성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19년 9월 27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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