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정민영

鄭玟永

1901. 1. 7 ~ 1970. 12. 6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정민영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북 음성(陰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음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1919년 음성군 음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901년 1월 7일 충청북도 음성군(陰城郡) 음성면(陰城面) 초천리(草川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8일 음성시장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음성면에서는 이미 3월 18일 양준성(梁俊成)·김용진(金龍鎭) 등 천도교 인사들의 주도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들은 면사무소 소재지에서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28일 이 만세운동에서 영향을 받은 서당 학생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앞서 진행된 음성면 만세시위가 중단되자, 초천리의 김영익(金榮翼)은 새로운 만세운동을 함께 조직할 동지를 찾을 생각으로 3월 27일 서당을 운영하는 정기선(鄭騏善)의 집을 방문하였다. 이때 “지금 조선 각지에서 조선 독립을 희망하여 독립운동의 수단으로 왕성하게 대한국 독립만세를 부르고 있다. 우리 일동도 내일 음성시장에 나아가 대한국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장에 오는 군중에게 호소하여 만세운동을 펼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라는 김영익의 제안을 받았다. 최만득(崔萬得)·정대영(鄭大永)·정문영(鄭文永) 등 다른 서당 학생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만세운동 제안을 수락하고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거사일은 만세운동을 결의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음성시장의 장날이 3월 28일이어서 인근 지역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 나오는 장날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만세시위 준비는 촉박하게 이루어졌다. 3월 28일 오후 2시 무렵 김영익·최만득·정대영·정문영과 함께 음성시장으로 나가 미곡상점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변의 군중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다수의 군중이 호응하여 동참해 오자, 시위대열의 선두에서 음성시장의 곳곳을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29일에도 만세운동을 계속 전개할 생각이었으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실행하지 못하였다. 1919년 4월 11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度)를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5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