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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炳鉉

咸炳鉉

1860. 11. 1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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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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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포천(抱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포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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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1919년 포천군 신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5) 1860년 11월 15일 경기도 포천군(抱川郡) 영중면(永中面) 양문리(梁文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0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사무소(新北面事務所) 앞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1일 이후 서울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과 관련된 소식이 전해지면서 서울과 가까운 포천에서는 3월 13일 포천읍에 위치한 포천공립보통학교(抱川公立普通學校)와 영중면에 소재한 영평공립보통학교(永平公立普通學校)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이후 3월 말에 이르러 포천의 여러 면에서 만세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3월 24일 영중면 영평리(永平里)와 소흘면(蘇屹面) 송우리(松隅里)에서도 만세운동이 진행되었다. 이어서 29일 소흘면 무봉리(茂峰里)에서 또다시 1,000여 명의 만세운동이 있었고, 군내면(郡內面) 유교리(柳橋里)에서도 200여 명의 시위군중이 만세운동을 결행하였다. 3월 29일 유중식(兪中植)·조훈식(趙薰植)·조계식(趙啓植) 등과 같이 3월 30일 아침에 포천군 신북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운동을 결행하기로 결의하였다. 시위 당일에 배포할 선언서와 태극기를 밤새워 인쇄·제작하는 등 거사를 위한 준비 작업에 매진하였다. 이보다 앞서 만세운동에 보다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촉구하는 “30일 아침에 신북면사무소 앞에 집합하여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자”는 취지의 통문을 작성·인쇄하여 각처에 배포하는 데 주력하였다. 3월 30일 오전 7시경 영중면 거사리(居士里)의 유중식과 함께 주민 수십 명을 이끌고 집결 장소인 신북면사무소 앞으로 도착해 보니, 이미 통문의 취지에 동의하여 2,000여 명의 주민들이 집결해 있었다. 인솔해 온 수십 명의 주민들과 같이 2,000여 명의 시위대에 합류하여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가행진에 참여하는 등 이날의 신북면 독립만세운동의 주도자 중 한 사람으로 활약하였다. 이날의 독립만세운동은 신북면과 인접한 영중면·일동면(一東面)·이동면(二東面) 등 여러 면 지역의 주민들이 함께 전개한 치밀한 사전계획에 의해 진행된 연합만세운동이었다. 만세운동이 점차 폭력시위로 양상이 바뀌자, 무차별 총격으로 탄압을 가하기 시작한 일제 헌병경찰에 의해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검거되어 1919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6월 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 또 다시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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