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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榮澤

榮澤

1901. 10. 9 ~ 1957.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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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榮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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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益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익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민립대학설립기성회
  • · 갑자연구회
  • · 익산청년연맹
  • · 신간회
  • · 조선청년동맹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신간회 익산지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01년 10월 9일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익산면(益山面) 이리(裡里)에서 태어났다. 민립대학설립기성회(民立大學設立期成會)·신간회(新幹會) 등에서 활동하였다. 1923년 실력양성운동의 일환으로 민립대학설립기성회가 조직되었다. 민립대학설립기성회 운동은 일제의 식민지 우민화 교육에 맞서 우리의 손으로 대학을 설립할 것을 목적으로 한 운동이었다. 민립대학설립기성회 창립총회에 전북지역 대표로 참여하였다. 1924년 1월 1일 전라북도 익산군 익산면 이리 임종식(林宗植)의 집에서 김영휘(金永輝)·임종식 등과 비밀결사 조직인 갑자연구회(甲子硏究會)를 조직해 소작과 노동 문제 등을 협의하였으며, 회원을 모집하며 조직을 확대해 나갔다. 갑자연구회는 익산 이리 천도교당 등에서 월례회를 개최하는 등 비밀결사 활동을 통해 사회주의 사상을 학습하였으며, 민중운동동맹(民衆運動同盟)이라 개칭하고 노동운동 및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25년 4월 8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무죄를 받았으나, 그해 12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1926년 10월 3일 익산에 있는 각종 청년 단체는 익산청년연맹(益山靑年聯盟)을 조직하기로 결의하는데, 익산청년연맹 발기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창립준비위원회 대표로 활동하였다. 1927년 6월 29일 신간회 익산지회(益山支會) 설립대회 개최를 준비하였다. 6월 28일 설립대회의 취지를 알리기 위해 “우리 신간회는 민족적 운동을 양어깨에 짊어지는 전 민족적 용아”라는 인쇄물을 작성해 익산지역 약 300가구에 배포하다 임혁근(林赫根)·배헌(裵憲)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심을 거쳐 1928년 2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등 위반으로 벌금 30원을 받았다. 1927년 8월 7일 조선청년동맹(朝鮮靑年總同盟) 상무위원회가 개최되어 옥중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30년 12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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