任龍泰
任泰1917. 2. 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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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5) 1917년 2월 5일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곽산면(郭山面) 염호동(塩湖洞)에서 태어났으며, 서울 아현동(阿峴洞)에서 거주하였다. 창씨명은 풍천용태(豊川龍泰)이다. 출신 배경과 집안 내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지만, 체포되기 전 회사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40년대 초 경성공립직업학교(京城公立職業學校) 재학 중 애국가를 보급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 이후 일제의 파시즘 정책은 극에 달하였다. 전황이 패전으로 기울면서 일제는 물자의 총동원을 강행하였고, 이로 인한 경제의 파탄으로 식민지 조선인들의 불만은 쌓여 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언비어와 낙서 등의 ‘불온’ 언동들이 표출되기 시작했는데, 일제의 패망과 한국의 독립을 희망하는 글들이 나타났다. 1940년 11월 하순 서울 아현동에서 “백두산과 황해의 물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한 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기리 보존하세”라는 내용의 애국가 가사를 경성공립직업학교 학생들에게 전파했다. 그뿐 아니라 경성공립직업학교 동급생들을 대상으로 일제의 패망과 조선의 독립을 운운하는 시국담(時局談)을 논하였으며, 한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이 아깝지 않다는 결의를 담은 서신을 친구인 김광록(金炚祿)에게 보내어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펼쳐 나갔다. 1941년 9월경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2년 6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후, 1943년 3월 11일 공주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4년 6월 9일까지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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