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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순

張璣淳

1890. 7. 1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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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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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희천(熙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희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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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독립청년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1890년 7월 11월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북면(北面) 명문동(明文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한자를 달리 한 장기순(張璣順)이다. 독립청년단(獨立靑年團)에 참여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독립청년단은 천마산대(天摩山隊)의 후계 조직으로, 1922년 천마사령(天摩司令) 최시흥(崔時興) 휘하 최오산(崔午山)·조준룡(趙俊龍)의 주도하에 조직된 비밀결사이다. 이 무렵 독립청년단에 합류하였다. 1923년 9월 21일 밤 9시경 독립청년단 소속으로 천마산대와 함께 평북 희천군 북면(北面) 명문동(明文洞) 창참주재소를 공격하였다. 이 사건으로 일제 경찰 1명이 죽었고 주재소와 면사무소가 소실되었다. 또한 무장투쟁을 지원하였다는 이유로 창참주재소에 구금되어 있던 임성률(林成律)을 구출하였다. 이 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3년 12월 2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공판 중 체포된 천마산대원과 독립청년단에게 고문을 자행하고 지역민들에 대한 조사 당시 가혹 행위가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 여론이 들끓었다. 원심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24년 7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7년 11월 15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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