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명환
張明煥1901. 3. 16 ~ 1949. 3. 2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군동소작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군동소작쟁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1년 3월 16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군동면(郡東面) 쌍덕리(雙德里)에서 태어났다. 1931년 군동면 소작쟁의에 참여하였다. 강진군 군동면에는 1924년 5월 소작인공제회가 만들어졌다. 1926년 2월 27일 400여 명의 조합원이 참석한 정기총회에서 소작료는 평균 40% 이하로 하며 비료 대금은 지주와 소작인이 반씩 부담할 것 등을 결의하였고, 명칭을 ‘군동농민회’로 개칭하였다. 1931년 11월 16일 군동면의 각 구역대표 300여 명은 군동면 소작인 부흥대회를 개최하였다. 그 자리에서 그 해의 기상이 나빠 수확량이 대폭 감소하였다며 소작료의 평균 20% 인하를 지주에게 요구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군동면 소작쟁의는 특히 일본인 농업회사 가네다산업회사(鎌田産業會社)에 집중되었다. 1931년 11월초부터 소작사건을 토의해 온 군동농민회는 11월 16일 읍내에 있는 지주를 상대로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는 동시에 도 당국으로 사유서를 진정하였는데, 그 후 사건이 확대되었다. 11월 28일 군동면의 200여 명의 소작인들이 가네다산업회사 목포지점 강진출장소를 찾아가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였는데, 언쟁 끝에 난투극이 벌어져 사무원 3명이 부상당하였다. 일제 경찰은 주도자 8명을 검거하였고, 11월 29일 소작인들은 검거자의 석방과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였다. 12월 9일 강진경찰서는 붙잡은 이들 중 26명을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으로 넘겼다. 이때 14명의 동지와 함께 이른바 폭력행위 위반과 상해,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1932년 2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폭력행위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에는 1933년 4월 전남운동협의회의 회원으로 활동을 계속하여, 야학에서 청소년들 교육을 담당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