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진
張錫鎭1892. 11. 22 ~ 192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농군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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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5) 1892년 11월 22일 함경남도 영흥군(永興郡) 순령면(順寧面) 신정리(新亭里)에서 태어났다. 1926년 농군회(農軍會)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농군회는 1925년 12월 24일 영흥군 순령면 신정리에서 한국의 경제문제가 결국 농촌으로 귀착되며, 따라서 모든 운동의 핵심이 농민경제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주 활동 방향은 “일반농민의 단결과 무산대중의 교양 지평을 넓히는 것”으로 밝히고, 회원을 모집하고 강습소와 강연단을 꾸리는 것을 중점으로 설정, 공포하였다. 사무소는 김영환(金永煥)의 자택이었으며, 함께 활동한 집행위원은 허동식(許東植)·허윤철(許允喆)·허명완(許命完)·허득수(許得洙)·허동순(許東舜)·정명재(鄭明在)·진성대(陳成大)·장수익(張秀翼)·우일훈(禹日壎)·우인흡(禹仁洽) 등이었다. 이때 농군회에 가담하여 집행위원으로서 일제의 식민지 농업정책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쳤다. 1926년 3월 우인흡과 함께 김영환의 집에서 “일제의 조선농회령(朝鮮農會令)에 의거한 군농회(郡農會)는 한국 농민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므로 그 설립에 반대하여야 한다”라는 내용이 담긴 선전물 약 50장을 만들어 순령면 소재 창송사립학교 학생들을 시켜 순령면 각 마을 구장들에게 반포하였다. 조선농회령은 한국의 농업정책기구로서 농회를 설립하고 각종 농업단체를 법제화, 제도화하는 것을 그 주요 골자로 하였다. 이는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성장한 농민의식을 바탕으로 활발해진 농민운동과 농민단체에 대한 일제의 경계로, 한국 농민과 농촌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이 같은 농군회의 활동으로 붙잡힌 후 함흥형무소 구치감에 구류되었다. 1926년 6월 28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고, 그해 10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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