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金光石1917. 3. 5 ~ 2012. 1.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징모 제3분처
- · 충의구국군 총지휘부 남의사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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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917년 3월 5일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 잉차면(芿次面) 토산리(兎山里)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택점(金澤漸)이다. 1944년 중국에서 광복군 일원으로 활동할 때, ‘김광석’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일제의 탄압에 못 이겨 중국으로 건너갈 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하고, 광복되기 전까지는 고향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44년 초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광더현(廣德縣) 마오린(茂林)에서 광복군 징모처 제3분처 김문호(金文鎬) 주임(광복군 제2지대 제3구대 제3분대장)과 접선이 되어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제3분처는 1942년 10월 1일부로 광복군 제2지대 제3구대 제3분대로 개편되었으나, 이후에도 징모 제3분처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징모 제3분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부가 1942년 2월에 이르기까지 광복군 병력 확대를 위해 신설한 5개 징모분처 중 하나로 모병기관이었지만, 중국군 제3전구(戰區) 사령부와 협조하여 대일작전을 전개하였다. 주로 정보 선전 공작, 일본군 포로 심문 및 정보 수집, 한인 교포를 위한 선무 공작 등을 수행하였다. 1944년 2월, 김문호의 명령으로 제3전구 관하의 마즈춘(馬志超)이 지휘하는 중국 유격부대 충의구국군 총지휘부(忠義救國軍總指揮部) 남의사(藍衣社)에 파견되어 지하공작을 수행하였다. 일본군 점령 지역에서 중국인과 함께 일본군의 정보를 수집하고, 한인 청년과 사병들을 대상으로 초모 공작을 수행하였다. 누더기 차림에 거지 행세를 하며 광복될 때까지 일본군으로 강제 징집당한 한인 청년 23명을 모집하였다. 이들 한인 청년들은 광복군의 기간요원이 되어 조국의 광복에 헌신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여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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