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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金光洙

1924. 4. 19 ~ 1999.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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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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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務安)광복군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무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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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경위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1) 1924년 4월 19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자은면(慈恩面) 고장리(古場里)에서 태어났다. 1944년 일본에 강제 징병되어 중국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 지구에 배치받았다. 후난성 창사 일대는 1939년 9월부터 1944년 6월까지 4차에 걸친 창사회전(長沙會戰)을 치렀던 곳으로 늘 전운이 감도는 곳이었다. 1944년 11월부터 일본군은 중국의 임시 수도 충칭(重慶)을 점령하기 위한 침공 작전을 계획하였으며, 중국군 역시 이에 대비하여 대규모 병력을 증강하고 있었다. 이렇게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많은 한인 사병이 일본군 부대를 탈출하고 있었다. 1945년 2월 이용상(李容相)의 도움으로 일제를 위한 무의미한 죽음보다는 조국에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고 부대를 탈출하였다. 이용상 역시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창사 남방 지구에 배속되었다가, 1944년 5월 탈출하였다. 이후 중국 중앙군 형산(衡山) 유격사령부에서 특수공작의 임무를 담당하여 활동하면서 일본군 내 한인 사병들의 탈출을 도와 광복군에 입대토록 하였던 것이다. 이용상의 도움으로 일본군 부대를 탈출한 한인 사병으로는 강재식(姜在植)·황의선(黃義善) 등이 있다. 1945년 죽음을 무릅쓰고 행군을 계속해 한국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는 쓰촨성(四川省) 충칭(重慶)에 도착하였다. 1945년 4월,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에 입대하여 임무를 수행하였다. 당시 경위대 소속 대원들의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경비와 임시정부 요원 및 그 가족들에게 대한 경호 업무였다. 그 외 연락과 비서 업무에 이르는 부서적인 임무도 수행하였다. 1945년 광복 후 경위대 대부분은 광복군 제1지대에 편입되어 환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여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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