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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환

全崎煥

1893 ~ 1931.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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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전기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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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金提)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김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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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김제노동조합
  • · 신간회 김제지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전북폭탄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전라북도 김제군(金提郡) 김제면(金提面) 신풍리(新豊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30년 당시 나이가 38세이므로 1893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23년부터 김제노동조합(金堤勞動組合)과 신간회(新幹會) 김제지회 등에서 활동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24년 3월 무렵 김제 읍내와 부근의 매갈이 인부, 운송인부 등 약 1,700여 명을 규합하여 김제노동조합(金堤勞動組合)을 조직하였다. 1927년 5월 1일 김제노동조합 조합장의 신분으로 메이데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계무산계급운동과 메이데이를 주제로 강연활동을 하였다. 이어서 김제노동조합 조합원 300여 명과 함께 김제 성산공원에 모여 만세를 부르고, 시내로 내려와 김제파출소를 지나 김제역 등으로 이동하면서 행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그해 5월 23일 풀려나자 김제노동조합 조합원 100여 명이 환영회를 개최하고 축하해 주었다. 6월 26일에는 김제청년동맹(金堤靑年同盟) 발회식에 참여하여 축사를 하고 만세삼창을 주도하였다. 1927년 7월 16일 김제신간위원회(金堤新幹委員會) 신간회 김제지회(新幹會 金堤支會) 결의에 의해 상무간사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그해 9월에는 조선노동총동맹(朝鮮勞動總同盟) 중앙집행위원이 되었고, 김제노동조합 회의에 참여하여 임금문제 등에 대해 토의하였다. 같은 해 9월 16일에는 전북화호농민동맹회(全北禾湖農民同盟會) 창립 3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를 통해 대중들에게 강연하고 만세삼창을 하였다. 12월 18일 ‘김제군 공덕면 개심사 수륙재 사건(金堤郡孔德面開心寺水陸齋事件)’으로 옥고를 겪다가 풀려난 정을(鄭乙)의 만기출옥을 기념하여 김제역전노동조합(金堤驛前勞動組合)에서 환영회를 열고 정을과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후 전남 담양(潭陽)에서도 노동조합을 설립하였고, 군산노동청년회(群山勞動靑年會)의 중역으로도 활동하였다. 1928년 6월 2일 일제의 관공서·은행·회사 등을 파괴하고 부호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추진하고자 권총·폭탄 등을 교환하며 준비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리경찰서가 이른바 전북폭탄사건(全北爆彈事件)으로 명명한 이 사건으로 인해 통의부원 조인현(趙仁賢)·조순식(趙純植) 등과 함께 1928년 6월 기소되었다. 이 일로 1930년 3월 1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징역 6월(미결구류일수 중 15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에도 일제의 감시는 계속되었고, 1930년 12월 8일에는 『조선일보』 지국장 조기하(趙琪夏)와 함께 김제경찰서 고등계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김제합동노동조합(金堤合同勞動組合)의 집행위원장을 지내며 노동운동을 지속하다가, 1931년 8월 16일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장례는 사회단체연합장으로 진행되었고, 김제노동조합에서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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