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석
全正錫1913. 3. 4 ~ 1972. 12.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간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9) 1913년 3월 4일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영주면(榮州面) 상망리(上望里)에서 태어났다. 1930년 신간회(新幹會) 영주지회원으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4월 23일 영주면에서 격문을 배포하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28년 김천청년동맹회관에서 경북기자대회가 열렸다. “언론의 신장과 공정을 도모하고 민중의 전위에서 여론을 대표하여 투쟁하는 전위분자의 친선”을 위하여 개최된 이 대회에 영주 언론인 대표로 참석해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0년에는 신간회 영주지회원(榮州支會員)으로 활동하였다. 신간회는 일제의 한국 지배의 부당성에 토로하고, 일제에 대한 투쟁을 촉구하는 격문 투쟁을 수차례 전개하였다. 1930년 4월 12일에는 이석근(李石根)의 집에서 동지들과 함께 격문을 작성하고 거사를 협의하면서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4월 17일 영주 읍내 순흥여관(順興旅館)에서 신간회 영주지회 등사판을 이용하여 격문 3,000장을 인쇄하고, 표어를 제작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4월 21일에는 영주군 단산면(丹山面) 사천리(沙川里) 여인숙에서 격문을 작성하였는데, “일본 제국주의 독재정치를 박멸하자, 조선총독 포악정치를 박멸하자, 우리가 약속민족을 해방시키자”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후 4월 23일 영주 장날을 기해 300여 명의 사람들에게 격문을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벌였다. 그 자리에서 일제 경찰에 의해 대부분의 동지들이 체포되었으나, 다행히 붙잡히지 않고 은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사망이 좁혀 오자, 그해 5월 4일 영주경찰서에 자수하였다. 1930년 5월 13일 열흘간 조사를 마치고 동지들과 함께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같은 해 6월 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및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해 그해 10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은 무죄를 받았지만, 다시 징역 10월(미결구류일수 36일 본형 산입)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