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承煥
許承煥1893. 9. 27 ~ 1938. 6. 2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흥무관학교
- · 의군부
- · 한족공산당연해주연합총회
- · 대한신정부혁명군
포상 정보
- · 애국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2) 1893년 9월 27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허승완(許承完)이며,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허항·허철 등의 이명을 사용하였다. 중국으로 망명하여 의군부(義軍府),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 등에서 활동하다가 1921년 러시아로 이동해 한국공산당연해주연합총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을 하였다. 1918년 12월 독립운동에 헌신할 뜻을 품고 가족의 품을 떠나 중국 간도 지역으로 망명하였다.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훈련을 받았다. 졸업 후 의군부에 입단하여 군법원장을 역임하였다. 의군부는 이범윤(李範允) 등이 1919년 만세운동의 영향을 받아 중국 옌지현(延吉縣)에서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이다. 의군부는 국경 지역에서 일제 군경과 전투를 벌이는 한편, 일제 기관 파괴와 친일파 처단 등 무장투쟁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한편 1920년 일제가 독립군 단체의 섬멸을 목적으로 간도 지역에 대규모의 병력을 보내어 독립군 세력을 학살하고 간도 지역 내 한인사회를 파괴하였다. 큰 타격을 입게 된 독립군 세력은 일본군의 토벌 작전을 피하면서 세력을 재정비하기 위해 12월에 다른 독립군 부대들과 함께 러시아 국경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이때 의군부 소속으로 러시아로 이동하던 중 중국 밀산(密山)에서 서일(徐日) 등과 함께 함께 대한독립군단 조직에 참여하여 중대장에 임명되었다. 이듬해인 1921년 부대원들과 함께 흑룡강(黑龍江)을 넘어 러시아로 이동하였다. 1921년 7월 러시아 연해주 추풍(秋風)으로 이동하여 최태순·장승옥·임명선 등 의군부 대원 20여 명과 함께 ‘한족공산당연해주연합총회(일반적으로 ‘솔밭관 한족공산당’으로 불리었다)’에 가입하여 활동을 이어나갔다. 한족공산당연해주연합총회는 연해주 남부지역의 한인들이 1920년 4월 일본군에 의한 ‘4월참변’에 비추어 볼 때 무력에 의한 단순한 독립운동은 불가능하므로, 공산주의를 표방해 러시아 공산당과 연계하는 것이 세력을 확장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1920년 8월 조직한 단체이다. 한족공산당연해주연합총회는 결성 직후 산하 무장단체인 ‘우리동무군’을 ‘공산주의군’으로 개칭하고 백위군과 러시아에 진출한 일본군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이어나갔다. 1922년 4월에 이르러 일본군은 솔밭관 한족공산당에 대한 토벌에 나섰다. 일제의 남부여단(南部旅團)은 보병 제12연대를 주축으로 한 제병연합부대(諸兵聯合部隊)를 편성해 4월 28일부터 5월 2일까지 솔밭관을 공격하였다. 이때 중대장으로 일본군과의 교전하되, 직접적인 대전을 피하며 대원들을 이끌고 중국 국경을 넘어 무장력을 보존하였다. 그해 6월 볼셰비키 스탄코프가와 함께 포크탑스크 마을에 집결해 있던 백위파 국경수비대를 공격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러시아 내전이 종전 국면에 이르자, 1922년 11월 10일 원동공화국 인민혁명군 총사령관 우보레비치(Иероним Петрович Уборевич)의 명령으로 러시아 원동 지역 내 한인 무장부대들은 무장해제를 하였다. 이에 일부 독립군들은 만주로 돌아가 활동을 이어나가기도 하였지만, 이때 러시아 연해주에 남아 독립군 부대원들을 규합하여 고려혁명군(高麗革命軍)을 조직하였다. 이때 특립대장(特立隊長)으로 활동하며, 이범석(李範錫) 등과 함께 한인 군사 세력을 재정비하기 위해 힘썼다. 1923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 송전관(松田關, 일명 솔밭관)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 결사대장에 임명되자, 일제 관헌을 처단할 목적으로 암살대를 조직하였다. 그해 12월 중국 지린성 둔화현(敦化縣) 황토요자(黃土腰子)에서 개최된 대표 회의에 의열단(義烈團)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여 고려혁명군 및 적기단(赤旗團) 등과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연대하여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1924년 11월 중국 왕칭현(汪淸縣) 나자구(羅子溝)에서 대한신정부혁명군(大韓新政府革命軍) 임시제2중대장으로 활동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을 이어나갔다. 이후 다시 러시아로 이주하여 원동변강 우수리스크주 이바놉스키지구 스네구롭카 마을에 거주하며, 콜호즈 ‘볼셰비크’에서 위원 및 콜호즈 들판작업반장으로 일하였다. 1937년 6월 17일 내무인민위원부 우수리스크주국 요원들에게 ‘1926년 일본의 이익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전개할 반혁명 스파이 조직 이르쿠츠크파의 일원’이라는 혐의로 붙잡혀서 우수리스크시 소재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38년 4월 29일 내무인민위원부 원동지부 트로이카의 판결로 최고형인 총살형과 개인 총재산 몰수 재산형을 받고, 6월 29일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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