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도
金根道1900. 12. 10 ~ 1983. 1.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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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900년 12월 10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천가면(天加面) 가덕도(加德島)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보통학교 4학년을 수료한 후 생계를 위해 일본 오사카(大阪)로 건너가 법랑(琺瑯) 공장의 직공 노동자로 일하였다. 노동자로서 전국 노동조합 동맹파업부 나니와(浪速) 지부에 가입하여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일제의 식민 통치와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리고 한국민의 해방과 번영을 위해서는 조국을 독립시키는 길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판단하고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1936년 4월 동향인(同鄕人) 이수룡(李守龍)·이수강(李壽康)·김성규(金成奎) 등을 규합하여 ‘재오사카가덕인친목회(在大阪加德人親睦會)’를 비밀리에 조직하였다. 1936년 4월부터 6월까지 두 차례의 회합을 통해 한국 민족에 대한 일본의 차별을 비판하고, 국토를 일본으로부터 탈환하고 독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재오사카가덕인친목회가 일본 사법 당국에 발각되어 해산되자 1939년 2월 초순경 박동화의 집에서 이수강·김성규와 대책을 강구하였다. 오사카에 재류하는 가덕도 출신의 청년들을 결집하여 표면적 체육 활동과 상호 친목을 도모한다고 표방하고 ‘가덕인청년부회(加德人靑年部會)’를 결성하였다. 가덕인청년부회에서 회원들을 지도·계몽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을 추진할 방침에 대해 협의하였다. 또한 “중일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일본에서 내란이 발발할 것은 필연적 사실이므로 그 기회를 타서 소련과 제휴하고 일제히 봉기한다면 한국 독립의 목적 달성은 가능하다”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장남인 김권일(金權一)에게 오사카시(大阪市) 니시나리구(西成区) 나카비라키정(中開町) 자택에서 한민족에 대한 일본의 차별과 압박을 비판하며 동지를 규합하여 독립운동에 매진할 것을 격려하였다. 한국 독립을 위한 활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2년 9월 30일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 형을 받았다. 12월 22일부터 복역하였고 일본이 패전한 1945년 10월 8일에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1996년 10월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에 흉상이 건립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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