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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炳鎬

崔炳鎬

1903 ~ 1924.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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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崔炳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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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蔚珍)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울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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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서로군정서
  • · 참의부

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3) 경상북도 울진군(蔚珍郡)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03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최병호(崔炳浩)를 썼다. 어려서 부모를 따라 만주에 건너가 퉁화현(通化縣)에서 소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국내외에서 거족적으로 일어나자 중동선(中東線) 일대를 전전하면서 동지를 찾아다니다가 왕칭문(旺淸門) 닝안(寧安)에 머무르게 되었다. 1921년 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가 북진군(北進軍)을 새로 편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응모하여 헌병대원이 되었다. 서로군정서는 1919년 4월 초순 류허현(柳河縣) 고산자(孤山子)에서 이상룡 등에 의해서 군정부(軍政府)라는 이름으로 조직되었다. 그러나 군정부가 수립되었을 무렵 상하이(上海)에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정부에서는 서간도 지역에도 정부가 수립된 것을 알고 여운형(呂運亨)을 군정부에 파견하여 임시정부에 통합할 것을 요청하였다. ‘하나의 민족이 어찌 두 개의 정부를 가질 수 있겠느냐’라는 임시정부 측의 설득을 받아들여 이상룡은 군정부란 명칭을 양보하였다. 그 결과 1919년 11월 17일 군정부는 임시정부에 참여하는 한편 서로군정서로 개칭하였다. 서로군정서는 독판제(督辦制)로 운영되었다. 최고지휘부인 독판부 아래에 무장 활동을 담당하는 사령부·참모부·참모처 등을 두었으며, 무장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보조해 주는 정무청·내무사·법무사·재무사·학무사·군무사 등을 설치하였다. 이밖에 입법 및 주요 안건의 결정 기관으로서 서의회(署議會)를 두었으며, 지방 조직으로는 분서(分署)를 두어 무장 독립운동의 효율성을 꾀하고자 하였다. 1923년 참의부(參議府)에 가담하였다. 참의부의 성립은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이하 통의부)에서 연원한다. 1922년 8월 남만주의 환런현(桓仁縣)에서 통합 군단인 통의부가 성립되었다. 이 통의부는 비록 남북만주의 모든 독립군 세력을 망라한 결집체는 아니었지만, 경신참변(庚申慘變) 이후 소규모 유격전을 전개하며 새로운 투쟁 방략을 모색하고 있던 남만의 독립군만이라도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시켰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한 성과였다. 그러나 통의부는 성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화파와 복벽파 간에 불화가 생겨 복벽주의 계통의 전덕원(全德元) 일파가 의군부(義軍府)를 조직하여 단체를 이탈하였다. 의군부는 이후 통의부와 잦은 마찰을 보였다. 따라서 통의부 의용군 제1중대장 채찬(蔡燦)을 비롯한 김선풍(金旋風)·최지풍(崔志豊) 등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이미 분열되어 두 조직으로 나누어진 양 군단이 다시 통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이에 채찬 등은 전 독립군 세력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하나로 뭉쳐줄 구심점이 있어야 됨을 깨닫고, 1923년 말 임시정부로 찾아가 만주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이들과 임정의 요인들 사이의 협의에서 서로는 임정을 구심점으로 만주의 독립군단들을 대동단결시켜야 한다는 합의점을 도출하였다. 따라서 채찬 등은 일단 통의부 의용군 제1·2·3중대와 유격대 및 독립 소대를 따로 분리시켜, 1924년 초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를 성립시켰다. 참의부의 명칭이 이와 같았던 것은 이 단체가 임시정부 직할 부대로 성립되었기 때문이었다. 참의부가 성립된 직후 통의부 의용군 제5중대장 김명봉(金鳴鳳)도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참의부에 가담하였다. 참의부 성립 초기의 간부진은 참의장 겸 제1중대장 채찬, 제2중대장 최석순(崔碩淳), 제3중대장 최지풍, 제4중대장 김창빈(金昌彬), 제5중대장 김창천(金蒼天), 독립소대장 허운기(許雲起), 훈련대장 박응백(朴應伯), 중앙의회 의장 백시관(白時觀), 민사부장 장기초로 구성되었다. 참의부는 성립 이후 지안현(集安縣) 화전자(花甸子)를 중심 근거지로 하여 압록강 접경 지역인 콴디엔(寬甸)·환런·지안·퉁화·푸숭(撫松)·창바이(長白)·안투(安圖)·류허(柳河) 등을 관할 지역으로 하여 이 지역 내의 한인들을 기반으로 자치 활동을 펴는 한편,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1924년 4월 8일 하얼빈의 일본 총영사 구니요시(國吉精保)와 영사관 경찰서의 형사부장이 하얼빈과 창춘(長春) 일대에서 한국 교민을 탄압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지 10여 명을 규합하여 건국청년모험단(建國靑年冒險團)을 결성하고 계획을 추진하던 중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하얼빈 도외 남십팔도구(哈爾濱道外南十八道溝) 중국 여관 동발잔(同發棧)에서 일제 경찰 2백여 명에게 포위되어 교전하였는데, 일본 영사를 사살하고 10여 명의 일본군을 쓰러뜨렸다. 항복 권유를 받자 “일본인의 앞에 항복하려면 차라리 죽고 말겠다”라고 버티었다. 결국 15시간의 전투 끝에 폭탄과 집중 사격에 의하여 김만수(金萬秀)·유기동(柳基東)과 함께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박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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