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鍾洛
洪鍾洛1886 ~ 19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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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경상북도 군위군(軍威郡) 부계면(缶溪面) 매곡리(梅谷里)에서 아버지 홍용재(洪龍在)와 어머니 청주 한씨(淸州韓氏)의 3형제 가운데 삼남으로 태어났다. 자료에 따르면 1886년생으로 추정된다. 본관은 부림(缶林)이고, 자는 덕표(德表)이다. 만주 지역에서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한 뒤, 만주로 건너가 흥업단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중국 지린성(吉林省) 푸쑹현(撫松縣)에서 조직된 흥업단은 단장 김호(金虎), 부단장 김혁(金赫), 총무 윤세복(尹世復), 재무 이원일(李源一), 경호 오제동(吳濟東), 교섭 김성규(金星圭) 등으로 구성되었다. 국내에서 청년들을 모집하여 단장 김호가 운영하는 백산학교(白山學校)에 보내는 한편, 군사 훈련을 시킨 후 이들을 국내에 침투시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음)10월 단원 권정락(權政洛)의 권유로 김종만(金鍾萬)·박재화(朴在華)·최명회(崔明會) 등과 함께 단원으로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해 11월 하순 양한위(梁漢緯)·권충락(權忠洛)·우홍기(禹洪基) 등과 함께 대구 양한위의 집에서 경북 청도군(淸道郡)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협의하였다. 이들은 권총 2정과 약간의 탄환을 소지하고 달성군(達城郡) 가창면(嘉昌面) 우록동(友鹿洞)에 모이기로 하였으나, 안내를 담당한 우홍기가 오지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이에 권충락·김종만·박재화 등과 함께 영천군(永川郡) 신녕면(新寧面)의 부호 권주경(權周慶)을 방문하였으나 부재중이라 대구로 돌아왔다. 1922년 1월 하순 권충락과 함께 달성군(達城君) 공산면(公山面) 지묘동(知妙洞) 최재교(崔在敎)의 집을 방문하고 권총으로 위협하며 군자금 30,000원을 요구하여 240원을 모금하였다. 같은 해 4월 하순 이만준의 명령으로 이재술과 함께 박수의로부터 권총 2정과 탄환 17발을 받아 봉화군(奉化郡)에서 독립군자금을 모집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사고로 출발하지 못하고 이재술·김우창(金佑昌)이 5월 27일 자동차로 봉화를 가게 되었는데, 이 사실을 탐지한 일제 경찰의 추적으로 군위(軍威)에서 체포되었다. 이때 관련자 28명 중 한 사람으로 붙잡혔다. 1922년 6월 1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겪다가, 1929년 만기를 채우고 풀려났다. 옥중에서 얻은 신병으로 1939년 2월 10일 사망하였다. 1984년 12월 고향인 군위군 부계면 매곡리에 「홍종락의사독립운동기적비(洪鍾洛義士獨立運動紀蹟碑)」가 세워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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