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黃龍河

黃河

1890 ~ 1926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黃龍河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미상만주방면

관련 단체

  • · 참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기록에 따르면 1890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알 수 없다. 만주 지역에서 참의부(參議府) 소속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참의부는 1924년 초에 성립된 재만 독립군단으로, 1920년대 중후반 만주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독립군단이다. 참의부는 1922년 8월 남만지역 항일무장투쟁 단체의 통합 기관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간부들 사이의 이념 분쟁으로 인해 분열되는 상황에서 결성되었다. 대한통의부는 1920년 경신참변(庚申慘變) 이후 남만의 독립군 부대들을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시켰다. 그러나 성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화파와 복벽파 간에 불화가 생겨 복벽주의 계통의 전덕원(全德元) 일파가 의군부(義軍府)를 조직하여 이 단체를 이탈하면서, 의군부는 이후 통의부와 잦은 마찰을 보이게 되었다. 통의부 의용군 제1중대장 채찬(蔡燦)을 비롯한 김선풍(金旋風)·최지풍(崔志豊) 등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이미 분열되어 두 조직으로 나누어진 양 군단이 다시 통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이에 채찬 등은 전 독립군 세력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하나로 뭉쳐줄 구심점이 있어야 됨을 깨닫고, 1923년 말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찾아가 만주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임시정부를 구심점으로 만주의 독립군단들을 대동단결시켜야 한다는 합의점을 도출하였다. 채찬 등은 통의부 의용군 제1·2·3중대와 유격대 및 독립 소대를 따로 분리시켜 1924년 초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를 성립시켰다. 참의부의 명칭이 이와 같았던 것은 이 단체가 임시정부 직할부대로 성립되었기 때문이었다. 성립 직후 통의부 의용군 제5중대장 김명봉(金鳴鳳)도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참의부에 가담하였다. 참의부 성립 초기의 간부진은 참의장 겸 제1중대장 채찬, 제2중대장 최석순(崔碩淳), 제3중대장 최지풍, 제4중대장 김창빈(金昌彬), 제5중대장 김창천(金蒼天), 독립소대장 허운기(許雲起), 훈련대장 박응백(朴應伯), 중앙의회 의장 백시관(白時觀), 민사부장 장기초로 구성되었다. 참의부는 성립 이후 지안현 화전자(花甸子)를 중심 근거지로 하여 압록강 접경 지역인 콴뎬(寬甸)·환런(桓仁)·지안(集安)·퉁화(通化)·푸숭(撫松)·창바이(長白)·안투(安圖)·류허(柳河) 등을 관할 지역으로 하여 이 지역 내의 한인들을 기반으로 자치 활동을 펴는 한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부서는 민사(民事) 조직보다 군사 조직이 중시되었으나, 민사부는 관할 구역을 13개 지방 행정구로 나누어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 6월 25일 참의부 자성군(慈城郡) 임시 주둔대 이등병으로 자성군 이평면(梨坪面)에서 일제 경찰과 교전하였다. 이 당시 전투를 치른 대원들은 참의부 자성군 임시 주둔대 참사 박언래(朴彦來)·이관석(李寬錫) 인솔하에 일등병 김연학(金連學)·김시태(金時泰), 이등병 김천일(金天日)·이길상(李吉祥)·이용익(李用益)·황용하(黃龍河)·예응복(芮應福), 삼등병 서광산(徐光山) 등이었다. 이들은 민가에 잠복 중이던 일제 경찰과 교전하여 일제 경찰 2명을 처단하였다. 1926년 강계군(江界郡) 이서면(吏西面)에서 제1중대원으로 일제 경찰과 전투 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성순⋮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