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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식

鄭東植

1850. 3. 4 ~ 1910.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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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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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益山)계몽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익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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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독립장(1962)

관련 사건

  • · 경술국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2) 1850년 3월 4일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배산(杯山, 현 익산군 북일면 모현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연일(延日)이며, 자는 경필(敬必)이다. 부친은 사헌부 지평을 지낸 정제호(鄭濟鎬)이다. 익산군 배산의 연일 정씨 집성촌은 조선시대 김종서(金宗瑞)와 같이 6진을 구축한 공로로 병조 판서까지 올랐던 정덕성(鄭德成)이 이곳으로 낙향하면서 비롯되었다. 이때 배산을 중심으로 사방 10리의 땅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송시열의 후손인 송병선(宋秉璿)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무예를 읽혔으며 활을 매우 잘 쐈다고 한다. 1876년 무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친군 별영 초관 겸 선전관(親軍別營哨官兼宣傳官)에 제수되었지만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1888년 4월 충무위(忠武衛) 좌부장(左部將)에 제수되어 왕세자를 시종하였다. 그 뒤 무예의 훈련 및 병서(兵書)의 습독(習讀)을 관장하는 훈련원 주부 및 수주부(首主簿)로 승진하였다가, 정3품의 어모장군(禦侮將軍) 훈련원 첨정(僉正)이 되었다. 이때 조정 군신들의 일제와의 강화 및 관리들의 부패를 통탄하여 사직하고 익산으로 낙향하였다. 1910년 8월 경술국치를 당하자 통곡하며 자제들과 종족들에게 남기는 글을 써놓고 전주로 떠났다. 비분강개하여 왜적을 성토하는 「토적문(討賊文)」과 「포고문(布告文)」을 전주의 4대문에 써 붙여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어 전라도 관찰사 이두황(李斗璜)에게 “내가 힘이 부족하여 나라를 지키지 못한 것이 너무도 부끄럽다. 죽어 귀신이 되어 왜적을 섬멸, 우리 선왕의 깊은 원수를 갚겠다”라는 「토역문(討逆文)」을 지어 주었다. 그 뒤 지금의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에 있는 공북루(拱北樓)에 올라가 의관을 정제한 다음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공북루는 조정에서 조령(朝令)을 받들고 사람이 내려올 경우 부윤(府尹)이 여러 관원을 인솔하여 나가 맞이하는 곳이며,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망궐(望闕) 행례(行禮)를 치르던 곳이었다. 1915년 익산에 설립된 백산서원(栢山書院)과 이산사에 제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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