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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彰緖

彰緖

1841. 8. 12 ~ 1911.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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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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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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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홍주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4) 1841년 8월 12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경칠(敬七)·만송(晩松)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895년에 홍주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항쟁을 전개하였다. 홍주 의병부대는 1895년 4월 안창식(安昌植)의 거의 논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일제는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켜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하였다. 이에 1895년 8월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하였으며, 개화정부를 내세워 을미개혁을 시도하고 11월 단발령을 공포하였다. 이에 유생들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1895년 11월 28일 안창식은 청양 출신의 채광묵(蔡光默)과 함께 이인영(李麟榮)의 집에서 향회를 실시하여 향회에 참석한 100여 명의 홍주 일대 유생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다음 날인 11월 29일, 180여 명의 민병을 모집하여 안병찬(安炳瓚). 채광묵이 홍주성에 입성하였다. 또 12월 1일에는 이봉학(李鳳學)·이세영(李世永)·김정하(金正河) 등이 신분을 위장하여 성 안으로 들어왔다. 다음 날인 12월 2일에 청양군수 정인희(鄭寅羲)의 명을 받고 민병 수백 명을 이끌고 함께 홍주부로 나아갔다. 박창로(朴昌魯)와 더불어 수백 명을 모아 홍주부에 집결하였다. 여기에 전직 고관인 김복한(金福漢)·이설(李偰)·홍건(洪楗) 등이 합세하여 1895년 12월 3일 김복한을 수석으로 추대하는 홍주 의병부대가 결성되었다. 의병부대는 홍주부 안에 창의소(倡義所)를 설치하고 홍주부 관할 군과 군내에 통문을 띄워 의병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때 송병직(宋秉稷)은 서면(西面) 소모관(召募官)으로 임명되어 나갔고, 이세영 이봉학, 이병승(李秉承)은 공주절제사에 임명되어 공주부로 파견되었다. 또 박창로·조의현(趙儀顯)·정제기(鄭濟驥)는 임존산성을 수리하기 위해 나갔는데, 이때 채광묵과 함께 남면(南面) 소모관에 임명되어 의병을 모으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홍주의병부대의 남면 소모관으로서의 활동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다음 날인 12월 4일 관찰사 이승우(李勝宇)가 홍주의병부대의 주요 인물들을 구금하였기 때문이다. 의병부대에 마지못해 협조하던 이승우는 전 승지였던 송언증(宋彥會)·최학연(崔學椽) 등이 불안감을 조성하자 실패를 두려워하여 김복한·이설·홍건·안병찬 등 23명을 구금하였다. 그 가운데 17명은 무죄로 석방되었고, 김복한·이설·홍건·안병찬·송병직·이상린 등 6명은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고종의 특지로 전원 석방되었다. 의병부대가 와해된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으며, 1911년 6월 20일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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