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忠求

忠求

1874. 8. 4 ~ 1907. 8. 19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忠求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남 예산(禮山)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예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74년 8월 4일 충청남도 예산(禮山)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홍문관 교리, 안동부 관찰사, 중추원 의관, 궁내부 특진관(特進官)을 역임한 이남규(李南珪)의 아들이다. 부친과 함께 의병 거사를 도모하였다. 부친 이남규는 일찍이 국내의 일본인들을 경계하여 1893년에는 서울의 왜병들을 축출하라는 내용의 상소를, 1894년에는 일본 공사 오도리(大鳥)가 군사들을 이끌고 서울에 들어온 것을 규탄하는 내용의 상소를 올린 바 있었으며,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렸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두문불출하였다. 그러던 중 1906년 충남 홍주(洪州, 현 홍성)에서 거병한 의병장 민종식(閔宗植)이 일본군과 전투 중 큰 피해를 입고 피신해 오자 은신처를 마련해 주었다. 이후 부친의 자택에서 친척이자 민종식의 참모로 있던 이용규(李容珪)·곽한일(郭漢一)·박윤식(朴潤植)·이석락(李錫樂) 등 수십 명이 모여 의병을 일으킬 것을 논의하자, 이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10월 거사준비가 갖추어졌으나 일진회(一進會) 회원이 밀고하여 계획이 누설되었다. 이에 부친을 비롯한 동지들과 함께 일제 헌병에 붙잡혔다. 일본군이 민종식의 행방을 캐물으며 가혹한 고문을 가하자 혀를 깨물고 자결하려 하였다. 부친 이남규는 이때쯤이면 민종식이 다른 곳으로 피신하였을 것을 알고 거처를 알려주었다. 조사 끝에 홍주의진과 무관하다는 판정을 받고 부친과 함께 풀려났으나, 이후로도 일진회원들은 이들 부자가 민종식 등 홍주의진을 지원하고 있다고 계속해서 밀고하였다. 1907년 일제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맺어 대한제국의 주권을 강탈하며 그 부속 밀약에 의거하여 군대마저 해산시키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들이 대거 봉기하였다. 그러자 일본군은 전부터 의병을 지원한다는 혐의를 두고 있던 이남규 부자를 체포하였다. 1907년 8월 19일 온양(溫陽)의 한 냇가에 이르러 일본군이 이남규를 칼로 베려고 하자 부친을 보호하고자 하였으나 끝내 함께 사망하였다. 이때 이를 막으려던 종복(從僕) 김응길(金應吉) 역시 일본군에 죽임을 당하였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세간에서는 충신(忠臣), 효자(孝子), 충노(忠奴)가 한 가문에서 나왔음을 칭송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