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섭
張奎燮1884. 3. 24 ~ 1944. 1. 1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의용단
- · 해서국민회
- · 대한적십자사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을사늑약
- · 1919년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4년 3월 24일 황해도 장연군(長淵郡) 장연면(長淵面) 읍외리(邑外里)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제에 박탈당하자 전국 각지에서는 일제 침략을 규탄하는 의병전쟁이 전개되었다. 이 무렵 1906년 황해도 연안(延安)의 유생이었던 이윤룡(李潤龍)·윤철모(尹哲模)·이재혁(李載爀)·차대수(車大輸) 등과 함께 의병활동 계획을 세웠다. 면암 최익현(崔益鉉)에게 서신을 보내 시국 문제와 해결방안을 의논하였다. 최익현은 이들의 우국충정에 감탄하면서 거의(擧義)를 권장하였다. 이후 교사가 되어 후학양성에 전념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만드는 등 만세시위에 앞장섰다. 또한 만세운동에 자극되어 장연에서 조직된 해서국민회(海西國民會)에 서무로 참여하였다.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내 비밀결사였던 의용단(義勇團)에 가입함과 동시에 대한적십자사(大韓赤十字社) 사원이 되어 독립운동을 계획하였다. 의용단 사령관이 되어 소단(小團)과 분단(分團), 부단(部團)을 조직하였다. 소단에는 10명의 인원을 두었고, 10개의 소단이 분단이 되고 다시 10개의 분단이 부단이 되도록 편성하였다. 이후 임시정부로부터 『독립신문』과 「임시군사주비단칙」을 교부받아 사람들에게 배포하여 독립심을 고취시키는 한편, 장연군·송화군·옹진군·해주군 등 황해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200명가량의 단원을 모집하였다. 입단하는 사람에게 입단금으로 매달 30전씩 징수하였다. 이는 무기를 구입하여 일제 경찰과 밀정, 친일파를 처단하는 데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독립공채를 교부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1921년 3월 황해도경찰부와 장연경찰서 두 곳의 협공을 받았다. 이때 대한적십자사와 의용단에서 활동하던 80여 명의 단원이 함께 붙잡혔다. 1921년 6월 28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받고 해주감옥(해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은지⋮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