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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호

田昌浩

1928. 3. 9 ~ 1993.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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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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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부산(釜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부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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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순국당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3) 1928년 3월 9일 경상남도 부산(釜山)에서 태어났다. 학생 신분으로, 1944년 비밀결사 순국당(殉國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부산제일상업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4년 5월 1일 부산진에 위치한 신정호(辛正浩)의 집에서 차병곤(車炳坤)·박정오(朴楨五) 등 12명의 동지와 함께 비밀결사 순국당을 조직하였으며, 서기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1943년 봄부터 독서회 활동을 통하여 국내외 정보를 교환하고, 함께 책을 읽으며 독립에 대한 의지를 다져오던 사이였다. 이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40여 개의 항일 학생결사가 있었는데, 그 중 순국당은 민족독립·국권회복을 목표로 여러 활동들을 계획하였다.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 총독 암살, 일본군 군사시설 파괴, 일본인 집단 거주지 방화, 은행 습격, 미군 공습 시 산불 놓기 등을 결의하고 준비하였다. 먼저 1944년 5월 상순 영도 다리 난간에 ‘독립만세’라고 쓴 벽보를 붙이는 일을 성공하였다. 그러나 계획했던 여타의 일들이 불가능해지면서 만주 독립군에 들어갈 것을 결의하였다. 이처럼 순국당의 조직원들은 독립군에 합류하기 위하여 만주로 집단 망명할 계획을 세웠으나, 실행 직전인 1944년 8월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조직원 모두가 붙잡혔다. 이후 1945년 8월 석방이 되기까지 미결수(未決囚)로 부산형무소에서 1년여의 옥고를 겪었다. 광복 이후 1948년 2월에서 1949년 5월까지 한국독립당 초급행정위원 직위를 지낸 후 1949년 5월 31일 탈당하였다. 그 후 1957년 11월 18일에서 1958년 1월 22일까지 대한민국 국방부 차관 예하 사무행정특보비서관 직책을 지내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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