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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수

鄭萬洙

1910. 12. 19 ~ 1990.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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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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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金泉)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김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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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910년 12월 19일 경상북도 김천군(金泉市) 봉산면(鳳山面) 인의리(仁義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동전만수(東田萬洙)를 썼다. 경북 금릉군(金陵郡) 구성면(龜城面) 상좌원(上佐院) 연안 이씨(延安李氏)의 이주영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5녀의 자녀를 두었다. 종교는 기독교이다. 보통학교에 입학하여 한 학기를 다녔으나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중단하였다. 17세에 충청남도 천안(天安)으로 이주하여 이발업을 시작하였다. 이발업을 하면서도 “독립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실력에 있으며 교육은 곧 국력”이라는 신념으로 자신의 집 한 켠을 비워 구성학원(龜城學院)이라는 야학을 만들었다. 이곳에 청년들을 모아 한글과 성경 등을 가르치다가 수백 명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로 이전하였다. 1943년 7월 집필한 책을 『조선일보』 천안지국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빌려주었는데, 이 책에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또한 야학 교사와 주고받은 서신에 “그날이 오면”이라는 문구가 적힌 것도 문제가 되었다. 이 일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15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57년 서울 중앙신학교에 입학하였다. “단 한사람이라도 가난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는 나 같은 젊은이가 다시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장학회를 마련하고, 고려대학교에 100만 원의 장학금을 희사하였다. 1989년 ‘코리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 평화 대행진’에 참가하여 백두산에서 판문점까지 행진하였고, 백두산 정상에서 출정식을 할 때 출정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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