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술
金庚述1893. 4. 27 ~ 1966. 4. 1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우곡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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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7) 1893년 4월 27일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 우곡면(牛谷面)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은 경술(景述)이라고도 하였고, 1919년 3월 당시 27세로 경북 고령군 우곡면 도진동(挑津洞) 박곡인(朴谷仁)의 집 고용인으로 살고 있었다. 고령 지역 만세 시위는 다섯 차례 정도 일어났으나 4월 6일 우곡면 도진동 만세 시위가 가장 주목된다. 이곳의 만세 시위는 우곡면 야정동(野亭洞)의 박재필(朴在弼, 32)이 4월 6일 오후 6시경 도진동 노경익(盧敬益)의 집 고용인 박영화(朴英華, 40)를 찾아와 최근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독립 만세 시위 사정을 말하고, 그날 밤 마을 사람들을 모아 만세 시위를 일으키자고 제의하였다. 이에 박영화는 적극적으로 찬성하였다. 박재필은 나팔을 불며 경각심을 돋우고 박영화는 마을을 돌며 주민을 모았다. 이때 김순동(金淳同)·김시원(金時元)·김구범(金具範)·정만도(鄭萬道)·박차천(朴且千)·강복이(姜福伊)·이상후(李尙後) 등 20여 명과 함께 참여하였는데, 특히 고용인이 많았다. 오후 9시경 박재필은 나팔을 불고 군중은 독립 만세를 외치며 천변(川邊)으로 모이니 시위 군중은 50여 명으로 늘어났다. 다시 천변에서 마을을 거쳐 우곡면사무소를 향해 ‘한국 독립 만세’를 외치며 계속 걸어서 밤 11시경 면사무소에 이르렀다. 시위대도 1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는 면사무소 앞에서 박재필이 나누어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 12시를 넘어 면장이 직접 나와 이를 만류함으로써 시위대는 일단 해산하였다. 그 뒤 박재필·박영화 등과 함께 고령경찰서에 잡혀갔다. 1919년 5월 1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살이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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