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조
鄭石祚1885. 10. 15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창의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5)
관련 사건
- · 창의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5) 1885년 10월 15일 충청남도 대전군(大田郡) 유천면(柳川面) 둔산리(屯山里)에서 태어났다. 토목업에 종사하였으며, 항일 비밀결사 창의단(倡義團)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창의단은 의병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독립운동 단체로 만주(滿洲)에 근거지를 두었다. 조직은 결사대, 재정부, 교통부로 구성되었다. 1926년 1월 말 창의단은 서울 시내 주요 관공서 및 건물에 폭탄을 투하하는 동시에 한국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격문을 배포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은 의병 출신 김응선(金應先) 등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창의단원으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김응선은 한국 내에서 활동할 것을 결심하고 고향인 충청북도 옥천군(沃川郡)으로 돌아왔는데, 이후 함께 할 사람을 모으며 폭탄 제조에 들어갔다. 1925년 (음)11월 초순 무렵 토공(土工) 감독으로 일하던 중 충청북도 옥천군 남면 가풍리(加豊里)에 있는 한석숭(韓石崇)의 집에서 염소산칼륨을 판매하였고, 이로써 폭탄 제조에 필요한 약품을 제공해 창의단에 참여하였다. 재료를 모은 김응선은 총 6개의 폭탄을 제조하였고, 1개를 실험한 뒤 5개를 서울로 운반해 계획을 진행하였다. 1926년 1월 28일 김응선의 권유로 김운용(金云用)·송암우(宋岩于)·정명옥(鄭明玉) 등과 함께 서울로 이동하였다. 1월 29일 김응선 등과 함께 서울 시내 주요 관공서와 건물을 사전 답사하였다. 1월 30일 창의단의 취지와 활동 내용을 공유하였고, 다음날인 1월 31일 주요 관공서 및 건물에 폭발물을 설치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때 정명옥은 조선총독부 신청사·김운용은 경성부청 신청사·김응선은 조선은행·송암우는 종로 경찰서를 담당하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으나, 그날 밤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김응선과 함께 피신하였다. 국경을 넘어 중국의 펑톈(奉天)에서 은신하였으나, 1927년 7월경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7년 8월 3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약품및약품영업취체령 위반으로 금고 3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그해 12월 1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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