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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염구

鄭濂球

1895 ~ 1927.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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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정염구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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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홍원(洪原)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홍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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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국민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주익면(州翼面) 봉현리(鳳縣里) 출신이다. 『동아일보』 1933년 기사에 1927년 사망 당시 나이가 33세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1895년생으로 추정된다. 한미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일찍부터 상업에 종사해, ‘홍원의 거성(巨星)’으로 불릴 정도로 재산이 상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음)7월경 북간도 국민회(國民會)에서 특파된 박용운(朴龍雲)으로부터 군자금 모집을 부탁받고, 홍원의 부호들을 찾아다니며 자금을 모집을 하였다. 그 결과 강협구(姜協求)로부터 6,000루블, 김태균(金泰均)으로부터 1,000루블, 도명수(都明洙)로부터 2,000루블, 안억준(安億俊)으로부터 5,000루블, 최대용(崔大鏞)으로부터 10,000루블을 모금하였고, 여기에 자신의 자금 1,000루블도 보탰다. 이외에도 김신근(金信根)·한원칠(韓原七) 등이 기부한 27원을 합하여, 총 25,000루블과 27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8월 모집한 군자금을 가지고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으로 향하여 국민회 회원 한위건(韓偉健)에게 이를 넘겨주고 돌아왔다. 2년 후인 1921년 4월에 이 일이 발각되어 자금을 기부한 김신근·한원칠·안억준·최대용·도명수·김태균 등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21년 4월 2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1년 정도 옥고를 겪다가 풀려났고, 이후 다시 상업계로 돌아왔다. 이때 “우리 민족의 생산물을 할 수 있는 대로 고가로 매수하여 중간 구전상인(口錢商人)의 손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보내며, 우리 민족의 필수품은 직접 제조원에서 염가로 구입하여 우리 소비자에게 일일이 공급하는 이상적 상인”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1925년 홍원에 큰 기근이 들자 기민(饑民)들을 구제하기 위한 모금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1926년 홍원청년회 제10회 정기총회에서 회관 차관 교섭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7년 8월 13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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