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익
全濟益1861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동의회
- · 순치동제당
포상 정보
- · 애국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6) 함경북도 회령군(會寧郡)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61년생으로 추정된다. 전제덕(全濟德)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을사늑약 체결 전 평안남도 선세위원(船稅委員)과 함북 길주항·성진항의 경무관(警務官)을 지냈다. 1904년 러일전쟁 시 성진항 경무관을 지낸 경력으로 ‘전경무(全警務)’라 불렸다.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자 동생 전준언(全俊彦)과 연해주로 망명했다. 일본 측 자료에 간혹 이름이 정제악(鄭濟岳)으로 언급되기도 하는데, 동생 전준언의 이명일 가능성도 있다. 이후 이범윤 의병부대에서 부장으로 활동했으며, 연추(煙秋) 지역의 최재형과 이범윤,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온 이위종 등이 동의회(同義會)을 조직하자, 동의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동의회의 초대 총장에는 최재형이, 부총장에는 이위종이 선출되었다. 동의회의 도영장(都營將)을 맡았는데, 휘하에는 참모장으로 오내범(吳乃凡), 참모에 장봉한(張鳳漢)과 지운경(池云京), 좌영장에 엄인섭(嚴仁燮) 우영장에 안중근(安重根) 등을 두었다. 동의회의 의병들은 1908년 (음)8월 함경북도 경흥에서 일본군 정찰병 4명을 사살하는 등, 여러 차례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했다. 1910년 8월 국권 피탈 직후 독립운동인사들이 블라디보스토크 한인학교에 모여 성명회(聲鳴會) 명의로 “유혈적인 방법에 의하여 합병을 저지한다”는 격문을 러시아와 만주 각지에 배포하는 한편, 각국 정부에 합병 무효를 선언하는 전문과 성명회의 선언서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 선언서는 이상설이 기초하고 유인석이 보완 완성하였다. 8,624명의 독립운동가의 서명이 첨부되었는데,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 1912년에는 혼춘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이 조직한 순치동제당(脣齒同濟黨)에 가입하였으며, 이후에도 1916년까지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홍범도·백규삼 등과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추정된다. 『회령군지(會寧郡誌)』에 따르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망하였다는데, 시기는 알려지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곽금선⋮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