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宗芳
宗芳1899 ~ 1924. 2. 2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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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 고산면(高山面) 출신이다. 1924년 사망 당시 25세로, 1899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한자를 달리한 이종방(李鍾芳)이다. 일찍이 한학(漢學)을 수학하였고, 양잠학(養蠶學)에도 능하였다. 1923~1924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의용군으로 활동하였다. 1922년 8월 지린성(吉林省) 환런현(桓仁縣)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광한단(光韓團)·한교민단(韓僑民團)·평북독판부(平北督辦部)·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등 남만주 독립운동단체 대표들이 모여 남만한족통일회의를 개최하고 각 조직을 통합하여 대한통의부를 결성하였다. 대한통의부는 군사 활동과 교민의 자치행정을 겸임하는 조직으로, 일종의 군정부(軍政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민사·교섭·군사·재무·학무·법무·참모·교통·실업 등 9개 행정부서를 두었으며, 의용군(義勇軍)이라는 이름의 군대를 보유하였다. 1923년 참사(參士) 김정욱(金貞旭)의 권유로 의용군에 입대하였으며, 3개월의 학술과(學術課) 수업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1923년 8월 11일 제1중대 분대장 부사(副士) 김종호(金宗浩)의 지휘에 따라 김창옥(金昌玉) 등과 함께 강계군 방면에서 일제와 교전하고 군자금을 모집한 후 90여 일만에 만주로 귀환하였다. 이후 1924년 2월 2일 일등병으로서 같은 분대의 독립군과 함께 강계군 고산면에 잠입하여 일제 경찰의 막사를 불태우고 일제 경찰 10여 명과 교전하였다. 한편 위험한 작전을 앞두고 1924년 2월 23일 김창옥 등 4명은 만주로 돌려보내고, 분대장 김종호와 분대원 주상일(朱尙日)과 함께 고산면 춘산리(春山里)에 머물면서 주민들을 규합하여 사상연설을 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때 일제 밀정과 해당 지역의 간부(奸富)의 신고로 일제 경찰에게 신원이 노출되었고, 같은 해 2월 25일 일제 경찰과 교전 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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