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太倫
太倫1892. 6. 25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군정서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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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1) 1892년 6월 25일 함경북도 경원군(慶源郡) 유덕면(有德面) 장안동(莊安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흥섭(李興燮), 이연길(李延吉)이다. 1915년 간도로 이주하였고, 이후 러시아에서도 활동하였다. 북간도에서 설립된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의 기세가 고양되고 독립운동의 역량이 모아지자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만주의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여러 독립운동단체들이 설립되었다. 같은 해 4월 공교회(孔教会) 등 다른 신도들과 중광단(重光团)을 확대 개편하여 대한정의단을 조직하였고, 그해 10월 대한군정회와 합하여 대한군정부로 개편하였다. 12월경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명을 받아 대한군정서로 변경하였다. 이때 여기에 가입하여 김학섭(金學燮)의 부하로 국내외를 오가며 무장활동에 전념하였다. 1921년 말 김학섭·문창학(文昌學) 등은 함북 웅기항(雄基港)을 습격하고자 준비하고 있었으나, 훈춘현(珲春县) 홍룡구(紅龍溝) 일대의 경비상황을 조사하니, 연말연시중 일제 군경의 특별경계가 심하여 이를 취소하고, 서방 40리 지점에 있는 신건원주재소(新乾源駐在所)를 습격하기로 결의하였다. 같은 해 12월 5일 대장 김학섭의 지휘 하에 대원 최시능(崔時能)·강병관(姜秉官)·최장혁(崔長赫) 등과 같이 국내로 잠입하여, 전원을 3개 대로 나누어 수비대와 경찰주재소를 공격하였다. 교전 끝에 주재소와 숙소를 파괴하고 송기안태랑(松岐安太郞)을 사살한 후, 두만강(豆滿江)을 건너 피신하였다. 추후 밀정의 밀고로 대원들과 같이 훈춘일본영사관에 붙잡혔다. 이후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 궐석재판(闕席裁判)에서 이른바 살인죄, 폭발물취체벌칙(爆發物取締罰則) 위반 등으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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