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泰碩

泰碩

1901 ~ 1920. 11. 11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泰碩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평북 구성(龜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구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국장(1998)

관련 사건

  • · 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8) 평안북도 구성군(龜城郡) 소기면(沙器面) 신시동(新市洞)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920년 사망 당시 19세로, 1901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로 이주한 이후 펑톈성(奉天省) 퉁화현(通化縣) 입봉(砬縫)에서 거주하였으며, 1920년 입봉에서 청년단원으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만주에서는 만세운동 이후 여러 무장독립운동 단체가 조직되었다. 그해 6월 봉오동 전투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전투에서 일제에게 피해를 입히던 시기로, 주로 군자금 및 단원 모집, 일제 기관시설 파괴, 친일 인사 처단 등의 활동을 하였다. 자세한 활동 내용은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았으나 청년단 소속으로 동료들과 위와 같은 활동들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만주에서의 독립운동 열기가 고조됨에 따라 일제는 1920년 10월부터 간도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여 독립군을 토벌하고 대륙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하여 경신참변을 일으켜 독립군을 비롯한 수많은 한국인들을 살해하였다. 이때 보민회(保民會)와 같은 친일단체가 독립운동가 색출에 큰 역할을 하였다. 보민회는 1920년에 만주 싱징현(興京縣)·환런현(桓仁縣)·퉁화현에서 조직된 단체로, 독립군의 정보를 일제에 제공하여 한족회와 청년단 등의 단체가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보민회를 앞세운 일본군에 의해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일본영사관으로 압송되던 중, 1920년 11월 11일에 퉁화현에서 살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