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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극

張南極

1894. 4. 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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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장남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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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온성(穩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온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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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북로독군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1894년 4월 9일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온성면(穩城面) 동화리(東華里)에서 태어났다. 1920년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에 가입하고 인사과원(人事課員)으로 군자금 모집과 문서 배포 활동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독립운동의 열기가 고조되면서 만주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많은 독립운동단체들이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각자 단체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방식이었으나, 점차 독립운동전선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하여 여러 조직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대한북로독군부는 1920년 5월경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 등 6개 독립운동단체가 연합해 결성하였다. 그리고 부장(府長)과 부관(副官)으로 각각 최진동(崔振東)과 안무(安武)가 선임되었고, 홍범도(洪範圖)는 북로제1군사령부 부장(部長)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800여 명의 독립군이 소속되어 있던 무장단체였기 때문에 군자금 확보는 매우 중요한 임무였다. 그래서 주로 국내의 각 군·면에 지단을 설치하고, 군자금 모집과 독립운동 선전활동을 펼쳤다. 1920년 7월경 대한북로독군부 온성지단이 설립되자, 이에 가입하고 인사과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8월 김학성(金學成)·이서오(李瑞五)·조정훈(趙鼎訓) 등과 같이 본부에서 보낸 독립사상 선유문(宣諭文)을 면사무소에서 등사판을 이용해 수 십장을 인쇄한 후 배포하였다. 또한 부원들과 같이 그해 9월까지 군자금 약 120원을 모집해 본부로 보냈다. 이러한 군자금 모집과 문서 배포 활동 등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면서 부원 15명과 함께 붙잡혔고, 조사 이후 재판에 넘겨졌다. 1920년 9월 28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청진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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