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정
張南正1851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평안북도 박천군(博川郡) 가산면(嘉山面) 남신동(南新洞) 출신이다. 1921년 『동아일보』 기사에 당시 나이가 70세로 기록되어 있어, 1851년생으로 추정된다. 서당교사를 하였다. 1920년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해 평북 가산지단을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한인사회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만주지역에서는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독립운동기지건설을 계획하였고, 많은 계열의 독립운동단체들이 설립되었다. 같은 해 4월 15일 대한제국 시기 의병계열과 여러 단체가 재정비하여 삼원보(三源堡) 대화사(大花斜)에서 대한독립단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재정 확보와 국내외 독립운동의 연락망을 조직하기 위해, 그해 12월까지 100여 개의 지단과 지부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삼원보에 본부를 두고, 서울에는 건국중앙기관(建國中央機關)을 설치하였다. 특히 평안도에서의 활동이 제일 활발하였는데, 평북 용천군(龍川郡)·태천군(泰川郡)·가산군(嘉山郡, 평북 박천군 가산면) 등에 지단이 설치되었다. 1920년 7월경 대한독립단 단원 박승연(朴勝衍)의 권유로 오봉희(吳鳳熙)·김흥서(金興瑞) 등과 가입하고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같은 달 중순경 김흥서·오봉희·김필수(金弼洙) 등과 같이 자택에서 대한독립단 평북 가산지단을 결성하였다. 이어서 지단장에 오봉희·부지단장에 김두극(金斗極)이 선임되었고, 동시에 주요 임원으로 임명되어 군자금 모집과 국내외 연락 등의 업무를 수행하며 독립운동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가산지단 단원들은 대한독립단 내지분치기관임시통칙(內地分置機關臨時通則)이라는 책과 경고문을 들고 다니면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후 평북 태천군 장림면(長林面)에 살고 있는 백운섭(白雲燮)에게 이를 전달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출동한 일제 경찰에게 김필수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21년 4월 2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9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1927년 5월 19일 특사로 사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