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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익염

張益濂

1890. 10. 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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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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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용천(龍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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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1890년 10월 3일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 북중면(北中面) 동양리(東陽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장시일(張時日)이다.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만주 지린성(吉林省)의 옌지현(延吉縣)·허룽현(和龍縣)·왕칭현(汪淸縣)·훈춘현(琿春縣) 지역은 대한제국 말기부터 한국인이 이주해 정착했던 곳이다. 경술국치 이후 만주 지역에는 유생들을 중심으로 한 의병부대들이 대거 이주하였고, 이들을 기반으로 한 보약사(保約社)·향약계(鄕約契)·농무계(農務契)·포수단(砲手團)이 건설되었다. 1919년 만세운동이 발발하자, 4월 15일 만주 지린성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유림 및 의병계열 독립운동가 560여 명이 모여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조직하였다. 대한독립단은 복벽주의(復辟主義)를 표방하였으며, 도총재(都總裁)와 총단(總團)을 두었고, 중앙본부와 지방지부를 나누어 서간도 지역 9개 현에 지단(支團)을 조직하였다. 또한 군사 조직으로 지린성 무송현(撫松縣)에 본부를 두고 4개 중대로 구성된 남만주제일사단(南滿洲第一師團)을 두었다. 대한독립단 설립 당시 도총재는 박장호(朴長浩), 부총재(副總裁)는 백삼규(白三圭), 총단장은 조맹선(趙孟善), 남만주제일사단 본부단총(本部團總)은 김창묵(金昌默), 본부대장(本部隊長)은 방사익(方士益)이 담당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한학을 배운 유학자들이었고,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의 문인들이 많았다. 이후 1919년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되자, 대한독립단은 이후 공화주의를 표방한 임시정부의 지지 여부에 따라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민국파 독립단과, 복벽주의를 주창하고 단기를 연호로 삼는 기원파 독립단으로 분리되었다. 민국파 독립단은 이후 1920년 8월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사령부에 통합되었고, 기원독립단은 독립적인 조직을 유지하였다. 나아가 대한독립단은 1919년 8월과 1920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국내에도 지단을 설치하기 위해 특파원을 파견하여 평안도·황해도 등지에 80여 개의 지단을 설치하였고, 국내의 인사들과 연합하여 단원 확보 및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 1920년 2월 황해도 재령군(載寧郡) 하방면(下坊面)에서 대한독립단에 참여하였다. 평북 신의주(新義州)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숙박업에 종사하였고, 만주로 이동하는 대한독립단원들의 활동을 보조하였다. 그해 4월에서 9월까지 신의주 및 용천군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후 체포되어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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