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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두

張俊斗

1893. 2. 1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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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장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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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구성(龜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구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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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복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2) 1893년 2월 17일 평안북도 구성군(龜城郡) 동산면(東山面) 금곡동(金谷洞)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독립운동에 관여하지 않았으나 형무소에서 만난 독립운동가들과 의기투합하여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고, 이후 국내에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5년 12월 22일 평양지방법원 정주지청에서 이른바 문서위조죄와 사기죄로 징역 6월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그러던 중 형무소에서 의병장 전덕원(全德元)의 부하로서 역시 수감되어 있던 김순조(金淳祚)·최신을(崔信乙)을 만나게 되었다. 전덕원은 서북 지역의 유학자로서 서북 지역에 상당한 인맥과 관계망을 가지고 만주로 건너가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통의부(統義府)·의군부(義軍府) 활동을 하면서, 전덕원 자신 혹은 부하들을 국내로 잠입시켜 서북 지역에서 기존 유학 관계망을 중심으로 군자금 모집 혹은 친일파 처단 등을 전개한 인물이다. 김순조와 최신을 역시 전덕원의 부하로 국내 활동 중에 붙잡혀 수감되어 있었는데, 이때 이들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풀려난 후에 독립운동을 하기로 약조하고 1926년 6월 22일 만주로 건너갔다. 중국 펑톈성(奉天省, 현 요녕성) 안둥현(安東縣)에 정착하였다. 1926년 10월경 최신을의 집에서 최신을·김순조·김병모(金秉模)·최용호(崔龍浩)와 함께 한복단(韓復團)을 결성하고, 지린성(吉林省) 인근의 독립단체와도 연락하여 국경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결성 후 바로 활동으로 들어갔는데, 다른 자료와 『조선일보(朝鮮日報)』에 보도된 일자에는 서로 다소의 차이가 존재한다. 우선 1926년 11월 30일에 김순조와 함께 펑톈성 장하현(莊河縣) 임가구(林家溝)의 김영택(金永澤)의 집에서 군자금을 징수하였고, 12월 2일 장하현 두구(杜溝)에서, 12월 19일에는 의주군(義州郡) 주내면(州內面) 어적동(於赤洞) 이근화(李根華)로부터 물자를 징발하였다. 12월 25일에는 김순조·김병모와 함께 의주군 광성면(光城面) 유초동(柳草洞)에 거주하는 조용욱(趙用旭)에게서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이외에도 신의주 인근에 거주하며 자발적으로 군자금을 납부한 이들에게는 영수증을 발부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이 일제 경찰에게 파악되어 1927년 2월 4일 안둥현 오도구(五道溝)에서 신의주경찰서 일제 경찰들에게 동료들과 함께 붙잡혔다. 같은 해 10월 5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가택침입죄, 공갈죄, 공갈미수죄, 강도죄, 강도미수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12월 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신의주형무소에서 다시 6년간 옥고를 겪다가 1933년 2월 29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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