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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운

張祉雲

1891. 12. 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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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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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의주(義州)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의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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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국민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1891년 12월 1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고진면(古津面) 인제동(仁濟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장인해(張仁海)이다. 만주로 이주한 후 남만 지역의 랴오닝성(遼寧省) 펑황현(鳳凰縣) 석두성(石頭城) 일대에서 거주하였다. 국민부(國民府)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에 진력하였다. 1929년 3월경 지린(吉林)에서 민족유일당조직동맹에 참여한 각 단체 대표자들이 3부 통일회의를 개최하였다. 그 결과로 같은 해 4월 새로운 합동기관으로서 국민부의 조직을 선언하였다. 종래 3부의 사무를 인계함으로써, 5월경 정의부, 참의부, 신민부가 정식으로 해체되고, 국민부가 정식으로 운영되었다. 그 후 남만주 지역의 민족주의 계열 운동조직은 체계적인 당·정·군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또한 국민부는 입법·사법·행정의 3권 분립체제를 지향하였으며, 일종의 자치행정기관으로서 한국인 교민을 보호하고 무장투쟁을 수행하였다. 중앙기관에 공안부를 두고 각지 중요지점에 경호국 또는 경호분국을 배치하여 치안과 경찰업무를 맡게 하였다. 일찍이 국민부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1931년 지린성 지안현(輯安縣) 경호국장으로 관할 내 한국인들의 치안과 민생문제를 해결하였다. 지안현은 신개하(新開河), 화전자(花甸子), 협도(夾島), 구재원(久財園), 패왕조(霸王曹) 등 지역을 망라한 지역으로,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곳이다. 지안현에서 활동하던 중 중국 관헌에 붙잡혀 신의주로 압송되었다. 1931년 2월 5일부터 조사를 받았고,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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