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범
全子範1898 ~ 1920. 11. 15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기록에 따르면 1898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로 이주한 이후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노두구(老頭溝)에서 거주하였다. 만주 지역에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소속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 만주 지역에도 항일운동단체의 독립운동이 활발히 발생하였다. 같은 해 4월 15일 지린성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유림 및 의병계열 독립운동가 560여 명이 모여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였다. 대한독립단은 국내외에 지단과 지부를 두어 각지에서 단원과 군자금을 모금하고, 특히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나아가 대한독립단은 1919년 8월과 1920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국내에도 지단을 설치하기 위해 특파원을 파견하였고, 국내의 인사들과 연합하여 단원 확보 및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 이때 대한독립단의 암살단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1920년 6월 봉오동(鳳梧洞) 전투에서 독립군이 일본군을 격파하자, 일본군은 10월 2일부터 이듬해 5월까지 독립군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비롯한 북간도 지역의 한인(韓人)을 학살하였는데, 이 사건을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 한다. 더욱이 10월 21~26일 국민회군(國民會軍)을 비롯하여 김좌진(金佐鎭) 등이 지휘한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 홍범도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등이 연합한 만주 독립군 부대가 일본군을 격파한 청산리(靑山里) 대첩이 일어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의 학살은 더욱 잔혹해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한독립단 소속 암살단원으로 활동하던 중 1920년 11월 15일 독립군의 무기와 서류 은닉 장소가 적에게 발각되어 추격을 피해 도주하다가 노두구에서 일본군에게 붙잡혀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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