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윤
鄭南允1889 ~ 미상
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 · 대한북로독군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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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5) 기록에 따르면 1889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알 수 없다. 만주로 이주한 이후 지린성(吉林省) 왕칭현(汪淸縣) 일대에서 거주하였다.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대한구국단(大韓救國團) 등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국민회는 간민교육회(墾民敎育會), 간민회(墾民會), 조선독립기성회(朝鮮獨立期成會)를 계승한 독립운동단체이다. 옌지현(延吉縣) 하마탕(蛤蟆塘)에 본부를 두었고, 기독교 장로파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총부 밑에 민정기관으로 8개의 지방회와 지방회 밑에 130여 개 지회를 두었다. 그리고 옌지현·왕칭현·허룽현(和龍縣)을 5구회(區會)로 나누고 그 밑에 52개의 지회를 두었다. 1920년 당시 대한국민회에 가입하고, 제2북지방회(第)2(北地方會)가 조직되면서 김남민(金南敏)·이용성(李用聖) 등과 같이 참사로 활동하였다. 한편 당시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기관인 간북북부총판부(墾北北部總辦府)에서 부재무관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대한국민회의 구천선(具春先)을 비롯한 중요 인물들은 무장투쟁을 통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기타 독립운동 단체와의 연합을 택하였다. 1920년 5월 27일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과 안무(安武)의 국민회군, 최진동(崔振東)의 군무도독부가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를 편성해서 본격적인 독립전쟁을 준비하였다. 대한북로독군부에서 군무국 과원으로 활동하면서, 그 해 6월 초의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도 참가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고려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는데, 고려공산당의 본부는 영고탑(寧古塔)에 두었고, 당시 북만지부 통신국장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북만지부장은 강구우(姜九禹)이고 선전위원장은 양도현(梁道憲)이었다. 1922년 10월경에는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상하이로 떠났다. 각 단체의 대표들이 모인 국민대표회의에 대한구국단 대표로 참석하여, 당파와 지방을 구별치 않고 연합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듬해 1월부터 개최된 본 회의에서는 임시정부 개편을 비롯하여 독립운동의 노선 및 방략 등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또한 1923년 6월 7일 39명이 출석한 국민대표 비밀회의에도 참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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