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항
鄭文恒1889. 4. 17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국민단
- · 적기단
- · 광정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1889년 4월 17일 함경남도 고원군(高原郡) 운곡면(雲谷面) 천을리(天乙里)에서 태어났다. 만주로 이주한 뒤 북간도에 위치한 옌지현(延吉縣) 일대에서 거주하였다. 북간도에서 국민단(國民團)·광정단(匡正團)·적기단(赤旗團) 등의 단체에 참여하여 무장투쟁을 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만주 지역에서 독립운동단체들이 설립되고 각지에서 독립운동이 산발적으로 전개되던 중, 1921년 10월 군비단(軍備團)·태극단(太極團)·광복단(光復團) 등 단체들이 통합하여 국민단을 조직하였다. 주로 국내 침입·군수품 제공 등의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국민단이 조직되자 산하의 국민단 의용군에 가입하여 상등병(上等兵)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11월 6일 소대장 김성연(金成淵), 참모 김화성(金化聲)·김성재(金成在) 등 대원 26명들과 같이 함남 삼수군(三水郡) 운전리(雲田里)에 있는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여 폭파시키고 순사 3명을 사살하는 동시에 무기를 얻는 등의 전과를 올렸다. 이듬해 4월경 국민단이 광정단으로 재편성되자 광정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1923년 10월 하순 지린성(吉林省) 어무현(額穆縣) 흑석둔(黑石屯)에서 적기단에 가입하여, 거주하던 옌지현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적기단은 1923년경 만주의 닝안현(寧安縣) 영고탑(寧古塔)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같은 해 11월경에는 김추일(金秋一)·신성당(申成堂) 등과 같이 옌지현의 숭의향(尙義鄕) 동불사(銅佛寺)와 수신향(守信鄕) 약수동(藥水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4년 1월 22일 오후 11시경에는 숭례향(崇禮鄕) 토문자(土門子) 종성촌(鍾城村)에서 김병수(金秉洙)·박춘산(朴春山) 등과 같이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4년 중순경 안무(安武) 등을 중심으로 의열단과 적기단 등 단체들이 통합하여 대한민국위원회를 조직하였는데, 이때 여기에 참여하고 김동녕(金東寧)과 같이 모금위원(募捐委員)으로 활동하였다. 그해 8월 7일에는 김영무(金永武)·안무 등과 같이 지인사(志仁社) 와룡동(臥龍洞)에서, 5일 후에는 김영무·이효(李曉) 등과 같이 와룡동 중촌(中村)에서 활동하였으며, 같은 달 19일까지 와룡동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을 하였다. 그러던 중 행적이 일제에 포착되어 붙잡혔다. 1925년 4월 30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으로 징역 6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9년 2월 10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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