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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南守

朱南守

1892. 9. 2 ~ 1930.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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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朱南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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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居昌)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거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신흥학교
  • · 서로군정서 의용대
  • · 장로파 기독교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2년 9월 2일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거창면 하동(下洞)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자금모금, 『신한별보(新韓別報)』 배포 등의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8월 이사술(李四述)·이성년(李聖年)·백기주(白基周) 등과 함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의용병(義勇兵)으로 파견되어 신흥학교(新興學校)에 입학, 군사교육을 받았다. 1920년 (음)2월에 귀향한 후, 장로파교회 장로 오형선(吳亨善) 등과 독립을 논의하여 정장현(鄭章鉉) 등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도록 설득하고,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당시 함께 활동한 동지들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은데, 장로파에 속한 기독교인이었던 영향으로 보인다. 1920년 4~5월경 오형선·송명옥(宋明玉)과 함께 독립사상 고취와 선전을 목적으로 한 『신한별보』를 수천 부 등사판으로 인쇄하여, 정장현·이갑수(李甲銖)·안덕보(安德保)·유진성(兪鎭成) 등 4명에게 배포하다 1921년 1월 8일 거창경찰서에 붙잡혔다. 1921년 2월 7일 부산지방법원 거창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3월 2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 후 동일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임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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