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鎭淳
鎭淳미상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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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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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황해도 평산(平山)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는 알 수 없다. 황해도 지역에서 이진룡(李鎭龍) 의병부대의 감찰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침탈당하는 한편, 1907년 6월 헤이그특사사건을 빌미로 한 일제의 강요로 고종은 그해 7월 19일 순종에게 황제의 직을 양위하였다. 또한 7월 24일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체결로 행정권을 일제에 침탈당하였고, 내정의 감독을 일제 통감이 자행하게 되었다. 이어서 일제는 8월 1일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에 서울의 친위대(親衛隊)와 시위대(侍衛隊)를 시작으로 9월 3일 함경남도 북청(北菁) 진위대(鎭衛隊)까지 해산령이 하달되었다. 나아가 일제는 1907년 9월 총포급화약단속법(銃砲及火藥團束法)을 공포하여 한국인의 무기 소지를 금지하였고, 기존에 소지한 총포류는 반납할 것을 천명하였다. 한국인의 무장 저항을 사전 금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대한제국 군인들과 산악 지역의 산포수들은 일제의 이러한 조치에 항거하여 각지에서 의병으로 분기하였다. 고종의 퇴위와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체결과 군대의 해산으로 인해 궐기한 이들을 가리켜 정미의병 혹은 후기의병이라 부른다. 이전의 의병이 주로 비전투원의 결집에 의한 비정규군의 성격을 가졌다면, 이 시기의 의병은 군인과 포수의 참여로 군사기술이 전문화되는 경향을 띠었다. 전투역량이 크게 증강되었으며, 지휘체계 또한 대한제국 군제와 유사한 형태로 운용되었다. 또한 의병부대들간의 연합작전이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장기항전을 위한 거점과 군자금과 군량미를 수급할 수 있는 기반 마련에 힘썼다. 이러한 가운데 황해도 지역은 을미의병 이래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유림들을 중심으로 한 의병 활동이 활발하였던 곳이다. 1907년 (음)8월 7일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이자 황해도 평산(平山) 출신인 이진룡과 장인인 우병렬(禹炳烈)이 평산의병부대를 일으켰는데, 이때 이진룡의 6촌 동생으로 평산의병부대에 가담하여 감찰(監察)을 담당하였다. 1909년 이진룡이 이끄는 창의유격대(倡義遊擊隊)의 약 80명은 평산군 온정원(溫井院) 헌병분견소(憲兵分遣所) 소속 일제 관헌에 의해 붙잡혔다. 이때 함께 붙잡혀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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