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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春京

春京

188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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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春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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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求禮)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구례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민종식 의병부대(홍주의병)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중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전라남도 구례군(求禮郡)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6년 당시 나이가 24세이므로 1882년생으로 추정된다. 상업에 종사하였으며, 1906년 민종식(閔宗植) 의병부대에 참여해 상등병으로 무기 운송을 담당하였다. 1905년 일제는 을사늑약을 체결한 후 통감부를 설치하고 외교권을 박탈하였다. 이에 분개한 민종식은 1895년 함께 의병활동을 함께 전개했던 이설(李偰)·안병찬(安炳璨) 등과 함께 다시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준비하였다. 1906년 3월에는 홍주(洪州) 군수 이교석(李敎奭)의 비협조와 충남 청양(靑陽)의 합천(合川)전투에서 관군과 일본군의 기습을 받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민종식의 처남인 이용규(李容珪)가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의병을 모아, 같은 해 5월 11일 홍산(鴻山)의 지치(芝峙)에서 400여 명의 의병으로 부대를 조직하였다. 이후 의병부대는 홍주로 진군하는 과정에서 여러 지역을 거치며 군사를 모으고 무기 등의 군수물자를 수합하여 전력을 보강하였다. 민종식 의병부대는 홍주를 목표로 1906년 5월 13일 서천(舒川) 관아에서 군수 이종석(李種錫)을 감금하고 무기를 수합하였으며, 비인군(庇仁郡) 판교리(板橋里)로 이동하였다. 다음날인 5월 14일 판교리 시장에서 민종식 의병부대에 합류하자, 선봉장인 박영두(朴永斗)가 상등병으로 임명하였다. 같은 날 조총으로 무장한 후 남포(藍浦)로 이동해 화약을 수송해 왔다. 그리고 5월 17일에는 민종식의 명령을 받고 포탄을 운반해오기 위해 다시 남포 간제(干堤)시장으로 이동하였다. 하지만 공주 진대병(鎭隊兵)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06년 11월 23일 평리원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流) 10년을 받았다. 전남 지도군(智島郡) 고군산면(古群山面)으로 유배되었다가, 1907년 11월 18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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