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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炳燁

炳燁

1860 ~ 1908.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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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炳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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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順天)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순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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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임병엽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임병엽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5)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쌍암면(雙岩面) 쌍암리(雙岩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60년생으로 추정된다. 임선달(林先達)이라는 이명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무과급제자 이거나 군인 경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 기록에는 역사(力士)로서 1882년 2월부터 1886년 4월까지 경성경위청(京城警衛廳)에서 근무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1907년 순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였다. 1907년 8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일제에 의해 고종이 퇴위되고 대한제국 군대도 강제로 해산되자, 전국에서 다시 의병이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의병의 궐기를 촉구하는 조규하(趙圭夏) 의병장의 의견에 찬동하여 전남 순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순천 출신 의병장 조규하는 1906년 임실군수로 재직하다가 최익현(崔益鉉)의 창의문(倡義文)에 동조해 관직을 사퇴하고 의병활동에 투신하였다. 이후 관군과는 전투를 할 수 없다 하여 최익현이 의병부대를 해산하자, 독자적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의병부대 조직을 모색하던 조규하와 함께 의기투합을 하고 의병활동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규하와 함께 50여 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순천군·동복군(同福郡)·보성군(寶城郡)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8년 6월부터는 조규하와 헤어져 동복군(同福郡) 모후산(母后山) 부근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다가, 같은 해 8월 18일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그리고 그해 8월 25일 이송되다가, 전남 낙안군(樂安郡) 우산촌(牛山村)에서 일제 경찰에게 저항하며 탈주를 시도하였지만, 끝내 총격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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