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옥여
任玉汝1871. 4. 29 ~ 1907. 11.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이천창의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이천창의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1년 4월 29일 경기도 양지군(陽智郡) 주동면(朱東面, 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촌리(坪村里)의 풍천(豊川) 임씨 세거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임경재(任景宰)이고, ‘옥여(玉汝)’는 호이다. 대대로 무관을 배출한 가문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농상공부 주사를 역임하였다. 1907년 이천창의소(利川倡義所)의 좌장(左將)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일제가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대한제국 군대까지 해산시키자, 전국에서 다시 의병이 일어났다. 이때 경기도 이천(利川)에서 김봉기(金鳳基)·이근풍(李根豊)·주창룡(朱昌龍)·조상현(趙常顯)·임형순(任亨淳) 등과 함께 이천창의소를 조직하고, 좌장으로 활동하였다. 주로 포군(砲軍)으로 구성된 이천창의소의 병력은 70여 명까지 이르렀다. 이천창의소의 의병들과 함께 이천 읍내의 순사분파소와 우편취급소 공격을 시작으로, 경기도 광주(廣州)·용인(龍仁)·양근(楊根)·양주(楊州)·여주(驪州) 등의 지역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펼쳤다. 특히 1907년 9월 14일에는 포군 18명을 인솔하여 양근과 안성(安城)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포군 36명을 인솔하여 경기도 죽산군(竹山郡) 원일면(遠一面)에 있는 고초곡(藁草谷)에서 일제 군경과 전투를 벌였다. 이어서 11월에는 광주군 상림(尙林) 길가에서 일진회원 4명을 처단하고, 또 백암시장(白岩市場)에서 일진회원 1명을 처단하였으며, 죽산군에서는 순사와 순검 각 1명을 처단하였다. 그러다가 그해 11월 10일 자택에서 수비대에 붙잡힌 후, 경기도경찰서에서 심문을 받다가 총격을 입고 사망하였다. 1993년 6월 10일 고향인 평창리에 업적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 건립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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