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근
林昌根1837 ~ 1907.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6)
관련 사건
- · 후기의병(함남 북청)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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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6)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안평사(安坪社) 엄방동(嚴防洞) 출신이다. 1907년 일제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나이가 70세이므로 1837년생으로 추정된다. 일찍이 포수로 활동하다가 그만두었지만, 1907년 북청군 안평사와 안산사(安山社) 두 지역의 포수들과 함께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희생되었다. 1907년 전국에서 다시 후기의병이 일어날 때 해산 군인을 비롯하여 농민·상인·포수·광부 등 평민들이 다수 의병부대에 참여하였고, 지휘부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북청군 안평사와 안산사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포수들의 조합으로서 포계(砲契)가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고령이었기 때문에 포수로 직접 활동하지는 못하였지만, 계장(契長)을 맡고 있었다. 1907년 포수 80여 명으로 구성된 포계를 기반으로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함께 대일 항쟁을 전개하였다. 이때 의병부대의 정독(正督)으로서 대장의 직위를 맡게 되었고, 차도선(車道善)과 홍범도(洪範圖) 등이 부독(副督)으로 임명되었다. 이어서 전투력이 뛰어난 대원들과 함께 북청군 신점리(新店里)에 위치한 후치령(厚峙嶺) 도감(都監) 조정국(趙正國)의 집을 근거지로 삼았다. 그리고 의병부대를 이끌고 북청군 일대를 돌아다니며 자위단(自衛團)과 일진회원 등을 처단하였다. 1907년 12월 초 일본군이 근거지를 찾아내고 의병부대를 공격하였다. 그러자 이전에 미리 총안(銃眼) 등을 뚫어 방어공사를 완료한 민가 5호를 방어진지로 삼고 일제 군경과 전투를 벌였다. 이때 노구를 이끌고 의병들에게 호령하며 최후까지 분투하였지만, 결국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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