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學圭
學圭미상 ~ 1909. 10.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안규홍 의병부대
- · 임창모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안규홍 의병부대
- · 임창모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정확한 출생시기와 출신지는 알 수 없지만, 전라남도 보성군(寶城郡) 출신이다. 본관은 조양(兆陽)이다. 한자를 달리하는 임학규(林鶴圭)와 임학순(林學淳)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의병장 임창모(林昌模)의 장남으로 1908년부터 안규홍(安圭洪)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고, 이후 부친과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이끌고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사망하였다. 임창모는 을사늑약으로 국권이 침탈되어 가는 현실에 분격하여 1906년 능주(陵州)에서 양회일(梁會一)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리고 능주를 공격하고 이어서 광주(光州)로 진격하였으나, 화순(和順)과 동복(同福)의 경계인 흑토치(黑土峙)에서 일본군에게 포위되어 분전하다가 결국 붙잡혔다. 이 일로 부친과 함께 지도(智島)로 유배되었다가, 1908년 해배(解配)되었다. 귀가한 직후인 그해 2월 부친과 함께 같은 보성 출신인 안규홍이 의병부대를 조직하는데 참여하였다. 안규홍은 본래 머슴 출신으로서 기의(起義)한 대표적인 평민 의병장으로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으로 고종이 강제로 퇴위되고 대한제국 군대도 해산되자, 이에 분격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안규홍 의병부대에는 가난한 소작농과 머슴 등이 다수 의병으로 참여하였고, 오주일(吳周一)을 비롯한 해산 군인들도 합류하였다. 이때 안규홍 의병부대에서 선봉장으로 임명된 부친을 보좌하며 크고 작은 전투에 참전하였다. 특히, 1908년 6월부터 부친이 안규홍 의병부대와 제휴하면서 독자적으로 부대를 편성해 항일활동을 펼치자 부장으로 종사하였다. 1909년 8월 3일에는 약 70명의 부하를 이끌고 장흥군(長興郡) 천포면(泉浦面) 청포(靑浦)에서 광주수비대 17명으로 구성된 토벌대와 조우하였고, 이후 보성군 옥암면(王岩面) 노산동(蘆山洞)까지 이동하면서 교전하였다. 그해 10월 12일 8중대 가지무라(梶村) 중위가 인솔하는 일본군 보병 제2연대와 보성군 복내면(福內面) 묵석리(墨石里)에서 조우하고 교전을 벌이다가 결국 10월 13일 새벽에 부친과 함께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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