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林漢祚

漢祚

1881. 7. 14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漢祚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영덕(盈德)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신돌석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신돌석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5) 1881년 7월 14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읍내면(邑內面) 우곡동(右谷洞)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07년 4월 신돌석(申乭石) 의병부대에 합류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돌석은 을미사변(乙未事變) 이후 1896년 경북 영해(寧海)에서 19세의 나이로 의병을 일으켰던 평민 출신의 의병장이다. 그리고 신돌석은 을사늑약 이후 1906년 3월 13일 다시 거병(擧兵)하고 경북과 강원 일대에서 유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1907년 4월경 신돌석 의병부대에 들어간 이후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4월 12일 약 100명의 동료들과 함께 총기와 도검으로 무장하고 영덕군 외남면(外南面) 하화동(下禾洞)의 최 찰방(察訪)으로부터 엽전 170냥을 군자금으로 징발하였다. 이어서 다음날에도 청하군(淸河郡) 청하읍(淸河邑)의 주민에게 담배 2묶음과 짚신 30켤레를 군수품으로 모집하였다. 이후 의병활동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1908년 10월 22일 의병활동 이력을 탐지한 일제 헌병에게 자택에서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08년 11월 4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옥고를 겪다가 1912년 칙령(勅令) 제23호에 의해 징역 8년, 1914년에는 칙령 제10호에 의해 징역 6년 9월 7일로 각각 감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